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분량이 꽤 되는 책이라 책값은 아깝지 않겠다 내심 안심하면서도 혹시 그럼에도 책값을 못하는 거면 어쩌지 하는 일말의 소심한 걱정을 했더랬는데, 결과적으로 책값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래 전에 쓴 책이라 요즘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살인의) 잔혹함, 장쾌한 스케일 같은 건 없지만 방대한 분량을 꽤 치밀하게 짜넣은 저자의 실력 때문에 시종일관 흥미롭게 읽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잔혹함이나 잔재주로 포장하는 소설보다 '구도'와 '추리'로 승부하는 책이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더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 이 책이 큰 장점인 것 같다. 멋진 몸매에 안 어울리는 얼굴을 갖고 있는 강인한 마리안, 단것을 밝히고 예술과 동물을 사랑하는 수다쟁이 악한 포스코, 비운의 여주인공이지만 백치미는 아니고 군데군데 용기를 낼 줄 아는 아름다운 로라, 확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소설의 배후에 존재하면서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흰옷을 입은 여인' 등... 세상이 정해놓은 스테레오타입을 조금씩 비켜가면서 머리싸움을 벌이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뒷표지에 누구는 5번이나 읽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추리소설의 고전적이고도 새로운 맛을 볼 겸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독서학교 - 태어나서 7세까지 우리 아이 두뇌 프로젝트
남미영 지음 / 애플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책을 나름 꽤 읽는다고 자부하고, 또 집에서도 TV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모범적인 엄마다(푸하하~). 친정엄마는 예전에 내가 책을 열심히 읽는 걸 기특하게 바라보면서 '네 아이들은 너 책보는 것만 봐도 책 좋아하겠다'고 칭찬해주곤 했다. 그래서 난 아이들 옆에서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독서교육은 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책 읽는다고(것도 침대에 누워서) 아이들 책 읽어줄 생각은 별로 안 했으니 남들이 내 착각을 알았다면 꽤 웃었을 것이다.

큰애는 아기 때부터 제가 책장을 넘겨야 하는지라 내가 읽어줄 틈을 주지 않아 읽어주길 단념했고, 작은애는 책을 거꾸로 놓는 이상한 버릇을 들여 날 약올리곤 한다. 우연찮게 남미영 박사님을 만나 둘째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더니 즉답은 안해주시고 '글쎄, 왜 그럴까요? 그렇게 보는 나름의 재미를 찾은 걸까요?' 하고 빙긋 웃으셨다. 무슨 비방을 듣겠다는듯 바짝 긴장했다가 살짝 김이 새긴 했지만, 내심 둘째는 무슨 재미가 있어서 저렇게 보는 걸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독서'라기보다는 책을 둘러싼 언어교육, 인성교육에 관해 엄마가 알아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아기의 독서교육 장에서 초점책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장가를 들려주라고 한다. '책'만이 최고라고 떠받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도록 알려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엄마로서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해져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 -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정상적인 사람들, 그들을 갑자기 돌변하게 만드는 마음 속의 숨겨진 욕구 5가지
데이비드 와이너.길버트 헤프터 지음, 김경숙.민승남 옮김 / 사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제목을 볼 때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같은 뇌실험과 관련한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는 책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읽어보니 정말 누구에게나 있는 미친 뇌(이너 더미)에 관한 내용이었다. 글 전개가 꽤 실용적이고 쉽게 분류돼 있어서 비교적 읽기 쉬운 데다, 다루는 내용 자체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내용이어서 공감하기 쉬운 책이었다. 획기적으로 새로운 발견 같은 걸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좀 안 맞을 수 있지만 여가용 독서로는 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런 책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책 한 권 쓰려고 온갖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는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존경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20년 연구성과 같은 걸 담고 있지는 않지만 방대한 조사자료를 토대로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런 자각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보수적이고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된, 그리고 자기와 다른 건 전혀 허용하지 않는 집단으로서의 기성세대는 아닐지 몰라도, 향유하는 문화가 이제 많이 다르구나 하는 느낌..

이 책을 본 건 책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88만원 세대>에 홍세화 선생이 쓴 추천사 때문이었다. 20대의 삶을 잘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안 그래도 <88만원>에 대한 충격이 컸던 차에 이걸 소설로는 어떻게 풀어썼을까 싶은 궁금증이 일었다. 요컨대 이야기에 대한 기대보다는 20대에 대한 호기심에 읽은 거다.

책에 묘사된 20대의 삶은 분명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발랄하고 소비지향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버는 돈 없이 흥청망청 쓰는 외양과는 달리 상당히 궁핍하고, 그만큼 현실적이라고 할까. 내 친구들도 석사 이후 일자리가 막막하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취직이 쉽지 않은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하고.

하지만 정작 내가 이질감을 느낀 건 '결기'의 결여를 보았을 때였다. 현실이 이렇게 팍팍하고 당장 손에 만원 한 장 없는데 퀴즈방에 의존하는 주인공은 좀 유약해 보였다. 편의점 알바 때려친 거야 사장이 뭣 같으니 그럴 수 있지만 어쨌든 뭔가 결사적으로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퀴즈쇼라는 이상한 현실도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으나, 여튼 팍팍한 회사생활 감내해 가며 월급 받는 나로서는 그런 게 눈에 거슬리는 거다. 소설을 이야기로 읽지 못하고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틀로 바라보니 주인공의 행동을 20대의 성향인 양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스스로 범하고 있지만, 읽기 시작한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이어서인지 확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일반화하고 선을 긋는 것도 20대 시절 혐오해 마지않던 '기성세대'의 단면일 텐데, 이것 고쳐야겠다.. ㅡㅡ:

* 아, 그럼에도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다. 엄청 집중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 재미있었지만, 결말의 어설픈 해피엔딩은 좀, 정말 어설펐다. 연재 분량이 다 됐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뭐 나까지 이 책에 칭찬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감상은 적고 싶었기에... ^^:

대학시절 소설을 별로 안 읽는 친구가 진실게임에서 자기가 읽었던 가장 좋은 책으로 이 책을 꼽은 적이 있었다. 명색이 국문과인 나로서는 이 대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고 심지어 제목도 그때 처음 들었다는 내색을 감히 하지 못하고 그저 응응,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 책을 읽어야겠구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집 책장을 보니까 이 책이 떡하니 버티고 있던 것. 남편과 함께 6년을 살면서 모르고 있었다니, 참... ㅡㅡ:

퍽퍽한 삶에서의 성찰을 담은 책을 좋아라하는 나로서는 기본적으로 동네 유지에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게 약간 아쉬웠지만(아쉬워할 것까지야 ㅡㅡ:) 어쨌든 40년대의 소박한 유년 기억을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하다니, 그리고 드러내기 쉽지 않은 가족의 우스꽝스러운 면면까지 이렇게 냉정하게 지적해 내다니, 화려한 수사 없이도 이렇게 찬란한 시절을 보여주다니,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대학 때 박완서가 마흔에 등단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용기를 얻었다가 나중엔 은근슬쩍 그걸 현재의 안일함에 대한 면피로 활용하곤 했다. 내가 당장 글 쓸 용기를 못 내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미뤄두고 온 거다. 흥. 마흔에 등단하기까지 작가가 품어왔을 글에 대한 열망이나 연습, 삶에 대한 성찰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이제는 마흔을 기약하는 것도 접은 지 오래지만, 노작가가 공들여 빚은 글을 찾아 읽는 걸로 새로운 위안을 삼을까 한다. 젊은 작가들의 발랄함은 따라올 수 없는 속 깊은 유쾌함이 살아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