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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뭐 나까지 이 책에 칭찬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감상은 적고 싶었기에... ^^:
대학시절 소설을 별로 안 읽는 친구가 진실게임에서 자기가 읽었던 가장 좋은 책으로 이 책을 꼽은 적이 있었다. 명색이 국문과인 나로서는 이 대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고 심지어 제목도 그때 처음 들었다는 내색을 감히 하지 못하고 그저 응응,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 책을 읽어야겠구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집 책장을 보니까 이 책이 떡하니 버티고 있던 것. 남편과 함께 6년을 살면서 모르고 있었다니, 참... ㅡㅡ:
퍽퍽한 삶에서의 성찰을 담은 책을 좋아라하는 나로서는 기본적으로 동네 유지에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게 약간 아쉬웠지만(아쉬워할 것까지야 ㅡㅡ:) 어쨌든 40년대의 소박한 유년 기억을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하다니, 그리고 드러내기 쉽지 않은 가족의 우스꽝스러운 면면까지 이렇게 냉정하게 지적해 내다니, 화려한 수사 없이도 이렇게 찬란한 시절을 보여주다니,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대학 때 박완서가 마흔에 등단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용기를 얻었다가 나중엔 은근슬쩍 그걸 현재의 안일함에 대한 면피로 활용하곤 했다. 내가 당장 글 쓸 용기를 못 내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미뤄두고 온 거다. 흥. 마흔에 등단하기까지 작가가 품어왔을 글에 대한 열망이나 연습, 삶에 대한 성찰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이제는 마흔을 기약하는 것도 접은 지 오래지만, 노작가가 공들여 빚은 글을 찾아 읽는 걸로 새로운 위안을 삼을까 한다. 젊은 작가들의 발랄함은 따라올 수 없는 속 깊은 유쾌함이 살아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