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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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들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그건 결코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삶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첫 단편부터 죽은 여고생들이 등장한다. 압정과 라디오 그리고 거울 등이 그들의 이름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에게 별명 붙여주는 걸 좋아한다. 별명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K. L. 김. 박. 등 이니셜들 뿐이다. 그건 네 번째 단편집과 한 편의 장편소설을 낸 작가가 가지는 고집 같다.

열 개의 단편들이 담겨있지만 읽다보면 한 편의 소설 같다. 여기도 저기도 죽음들과 우연들이 가득하고 실제 소설 속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스치기도 한다. 다른 단편의 주인공들이 다른 단편에서는 한 장의 문장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로 죽은 여고생들,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죽은 노인, 자신의 장례식을 치른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는 삼촌 등 이번 소설에서 그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슬퍼하냐고? 결코 아니다 그들은 영혼으로 떠돌다가 날아가는 법이나 물건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고 고군분투한다. 다른 집의 소음들을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혼자 상상하며, 친구들의 어깨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작가 윤성희가 만들어 내는 인물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늘 가볍다.

상처나 불행이나 슬픔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녀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아주 자잘한 슬픔들에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불행까지 고루고루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좌절하거나 막장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은 늘 그런 거니까.

소매치기나 도둑질 등의 범죄도 저지른다. 가출하고 가족을 버리고, 버림받고, 그녀의 소설에도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작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유령이 된 여고생들이 고생을 하며 공중부양하는 법을 깨우치듯 그녀의 주인공들은 조금씩은 중력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운 듯 가볍다.

‘우연’은 그녀의 소설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실제보다 더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가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비웃듯 모든 것을 우연으로 만들어 버린다. 길에서 처음만난 사람들이지만 친절하게 캠코더를 보며 ‘할머니 안녕하세요,’를 말하게 만들고,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결혼하게 하고 남대문시장에서 25년 만에 가출한 언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은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늘 간지럽게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고집하는 ‘우연’과 많은 한 배를 탄 무리들의 이니셜들 - 그녀의 소설에는 대부분 무리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압정과 라디오와 거울과 같이, - 지금까지는 그런 것들이 그녀의 소설의 특색이었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야겠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에 덧붙임. 그리고 간지럽게, 시크한 듯, 따뜻하게 위로하기.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위로가 유효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지겨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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