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명절 연휴에 집에서 잠이 오지 않을 때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일찍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이 책을 읽었다. 처음으로 읽은 전자책이라 책의 내용만큼이나 느낌도 색달랐다.

소설은 주인공 래생이 애써 아무렇지 않게 살려는 것과 같이 무심하게 시작되고 무심하게도 슬픈 결말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의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작가도 있지만 이 작가는 ‘이름’ 곧 호명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來生’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이름들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혹은 불리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 이름만큼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독특하다. 도서관 관장인 너구리 영감, 미토, 미사, 미나리 박, 추, 한자, 이발사, 독서대와 스탠드 등등 주변에서 늘 보는 단어지만 그것이 낯선 방법으로 불리고 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 줄로 요약해서 줄거리를 말한다면 살인 청부업자의 어둡고 슬픔 삶. 이 전부다. 호들갑스럴정도로 새로운 스토리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만의 방식대로 설계된 이 소설은 낯설게 읽힌다.

설계자라는 인물이 살인을 설계한다. 누굴 죽이고 어떤 식으로 죽일지 알려준다. 래생과 같은 킬러들은 그저 지시가 내려지는대로 사람을 죽인다. 이유는 없다. 돈을 받는다. 묻지 않는다. 궁금증조차 갖지 않는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가끔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잠적하며 잠시 가공의 인물로 살아간다. 가끔 소식이 없는 동료는 죽임을 당했다고 당연하게 믿는다. 불안한 생각이 들면 밤을 새어 온 집안에 있는 것들을 자르고 분해해서 무언가 없는지 찾아낸다. 결국, 화장실 변기에서 조그마한 폭탄을 발견한다.

가끔 재치있는 문장에 혼자 책을 읽다가 큰 소리로 웃는다. 동물에게 독서대라는 이름을 붙여 줄만큼 센스가 있는 작가 혹은 주인공은 슬프고 잔인한 어둠의 세계를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여 끊임없이 정리해나가듯이 차분하게 설계한다. 이 작가의 세계가 너무 어둡지도 슬프지도 신나지도 않아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독특하듯이 캐릭터 또한 분명해서 눈앞에서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런 만큼 오래 기억할만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소설을 쓸 동안 숲에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시작은 숲.이다. 숲에서 혼자서 노트북을 켜 놓고 긴긴 밤을 혼자와의 싸움을 할 작가를 생각하니 주인공 래생의 첫 등장하는 장면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것 같다. 고독한 숲 속에서 작가도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감자를 먹는 상상을 오래오래 했을 것이다.

너무 순식간에 읽혀서 아쉽지만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소설.

독서대와 스탠드, 어쩌면 그것은 작가의 진짜 친구들이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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