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누군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건네주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이 책을 직접 집어 드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노란색바탕에 무표정의 여자아이가 그려진 책의 표지는 수 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특이하다’라는 단어가 싫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 모두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물론, 한 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러니까 각자의 개인적인 시선에서는 어떤 존재가 특이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지루해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묶어 버리고는 너무도 평범하고 지루한 사람들이라고 묶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 그렇게 각자 묶어 버린 평범한 인간들의 교집합들이 우리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아주 평범한 범위의 인간들이 된다. 가끔은 누군가 정해 놓은 것 같은 그 평범함의 전형들이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특이하다라는 말을 싫어하게 된 건 아주 유치한 이유에서이다. 나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개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특이하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좀 특이한가?’ ‘난 너무 특이하단 말이야.’ 라고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특이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그들을 보면서 그들을 부정하면서,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도 특이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루하고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게 싫다. 그러나 나에게 상대가 지루하다면 상대도 나를 지루하게 느낀다. 그런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주 단순한 이 단어 ‘특이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무표정의 여자가 무언가 말하는 듯 한 그 책을 집어 들기가 싫었다. 표지의 여자 아이가 책 속에서 나는 좀 특이해요, 라고 말할 것만 같았고 그렇다면 나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거부감을 일으킬 것 같았다.

  잘 살펴보면 소설에서는 특이한 아이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저 특이한 공간이 나올 뿐이다. 그 상황 때문에 그들은 특이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몇 명의 아이들은 그저 특이한 상황에 앉아 있을 뿐이고, 거기 존재할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비로소 그 음식점의 메커니즘이 새삼스레 조금씩 이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현실이라는 장편의 축소판은 아닐까? 평범한 음식점은 현실의 연장 또는 보완으로 존재하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이 없다. 현실과 연관성을 잘라내고 그러게 함으로써 현실의 구조를 투영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음식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게 다 이다. 그게 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야기를 반쯤 읽었을 때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지루해졌다. 주인공이 말하는 하나하나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그가 느끼는 것 표현하는 것 음식점이란 곳이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식의 직접적인 대사와 노골적인 표현들, 나는 그게 다인 것만 같아 사실 작가가 젊은 사람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었다. 작가는 이미 추리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제야 작가의 이력을 자세히 살펴 본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다 넘겨진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봐야 했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정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 만한 결말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고독’은 유쾌한 소재가 아닐지 몰라도 나는 그의 소설자체가 노란색 표지만큼이나 유쾌하게 느껴졌다. 노련한 단순함. 작가는 이 글을 쓰고 분명 씩 한번 웃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이란 건 사회와 마을처럼 집합을 의미한다. 좀 더 세세한 의식이란 존재가 무수히 있고 그것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여행하는 사람이나 철새처럼.

  내 안에 바로 지금 존재하는 의식이, 현재의 나를 의견에 따라 움직이게 할 뿐이고 사실은 변하지 않는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와 잠시 닿은 손 때문에 나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이치를 지금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보기 시작하는 편이 좋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작가나 감독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도 말고 처음부터 비판할 거리만 찾으려는 날카로운 눈빛도 잊고 그저 작가나 감독이 차려 놓은 밥상을 맛있게 즐기는 편이 좋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코스 요리 속에서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달콤함에 감동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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