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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평점 :
나도 눈을 땠을 때 바다에 잠겨 본 적이 있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눈물들로 가득 찬 방 안에서 혼자 눈을 떴을 때 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 나의 바다 속에는 수많은 내가 둥둥 떠다녔고 날 아프게 했던 사람들도 조그맣게 떠다녔다. 그런 아침을 맞을 때면 하루 종일 나는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듯 보냈다. 몸은 너무 무거웠다.
저마나 슬퍼하는 방법과 화를 내는 방법과 증오를 풀어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할아버지는 뒷산에 나무를 심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른다. 슬픔이나 화나 증오는 오래 담아 둘수록 부패되어버리는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잘 풀어내는 사람일수록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좀 더 분명히 지켜낼 수 있다. 그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에 휘둘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니은이는 열일곱이라는, 어쩌면 이르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그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하는 중이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던 소녀는 갑작스럽게 닥친 현실과 감정들에 휘둘리고 비틀거리다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나에게는 실제적인 ‘죽음’에 대한 상실의 경험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의 상실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종류의 상실의 슬픔과 증오와 혼란들이 넘실거리고 있다. 바다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종종 누군가 내 슬픔을 알아주고 안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도 나를 아는 척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대로 혼자 바다 속에서 숨이 막힐 때까지 잠겨 있고 싶었다. 내가 슬퍼하는 방법은, 그냥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몸이 슬퍼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방해하지 않고 눈물이 마르고 슬픔이 증발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리고 살짝 다독여주기, 가끔은 이래도 괜찮다고,
신화처럼 숨을 쉰 다는 것은, 그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고래나 코끼리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그들을 그 자체로 우리들에게 많은 신화를 들려준다. 그들은 그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뿐일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준다. 니은이의 부모님의 죽음을 보면 사실 살아있음이라는 것은 큰 기적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보며 숨을 쉬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기적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신화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부모님이 니은이에게 남겼던 질문, 니은이가 계속 가지게 되는 질문, 신화처럼 숨을 쉰다는 것의 의미. 아마 그건 평생을 두고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어쩌면 부모님도 잘 알지 못했던 그런 방식으로 니은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화처럼, 그렇게 숨을 쉬며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혼란스러운 열일곱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누구나 자신만의 혼란한 시기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숨을 쉬며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