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예의 역사 - 인물로 읽는
임태승 지음 / 미술문화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권위주의 정권 시절 '신년 휘호'라는 것이 유행하였다.

정통성이 부족한 무인정권이다 보니, 통치자들은 서예를 통해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문인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는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이러한 휘호에는 박정희와 김종필이 능했다. 김종필은 군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한학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씨도 꽤 잘 썼다. 박정희의 글씨는 솔직히 그저 그런 수준인데도 여기 저기에 엄청나게 많은 필적을 남겼으니 다작 하나는 인정해줘야 하겠다.

무신정권이 끝난 후에도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 온 김영삼과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신년휘호'는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시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바뀌면서 통치자의 신년휘호는 이제 자취를 감춘 것 같다.

신언서판이라고 하였듯이, 유교적 소양을 따지는 사회에서 글씨는 그 사람의 교양을 단번에 드러내는 증표였으며, 보는 이는 비단 서체의 단정함을 따질 뿐만 아니라 그가 쓰는 글의 깊이와 향기까지 함께 평가하였으므로 가벼이 넘길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 서예는 상류층과 일부 식자의 도락으로 쇠락해버린 느낌이다. 우선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붓글씨를 쓸 일이 없다. 제사에 쓰는 지방도 프린터로 인쇄해서 붙이는 판이니 통상의 편지글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손으로 글을 쓴 연하장이라도 받는 날엔 보낸 이가 달리 보이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이렇듯 저물어가는 서예의 역사에 관해서 임태승은 서두르지도 않고 까다롭게 굴지도 않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경 2천년 전을 살았던 종요와 장지를 시작으로 하여 서성 왕희지, 왕헌지 부자를 거쳐 장욱과 회소의 광초로 이어지고 조맹부의 송설체를 지나 등석여의 전서에 이르기까지 중국 서예사의 중요한 인물에 관한 입문서로서 이 책은 최상이 아닌가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서예전시실은 사람이 뜸하다. 우선 내용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고 그 좋고 나쁨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게 되면 보인다고 하였다. 내가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분명 회소의 자서첩이 훨씬 달리 보였을 것이다.

임태승은 한국의 동양예술학 연구에 관한 대중의 저변을 넓히는 중요한 존재다.

명실상부한 별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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