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가 굳은 형 섹스투스는 제외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안 사내들의 문제는 꼭 아들을 둘 이상 낳았으며 그럼으로써 처하게 되는 곤 경에 늘 유약하게 대처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굳게 다스려 남아도는 아들은 입양 보내고 나머지 자식들도 돈 많은 집에 혼인시켜야 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드넓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안의 소유지는 한 세기마다 쪼개져 두세 명의 아들을 뒷받침하는 데 쓰였고, 일부는 딸들의 지참금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