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15.9.10 - no.002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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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vol.2에 실린 박민규 인터뷰를 읽는다. 인터뷰어는 '배수아'

그 시작


박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여름 이맘 때였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친구 하나와 경쟁이 붙었다. 태어나서 그날만큼이나 지혜를, 또 상상력을 동원한 기억이 없다. 즉 꿈에도 찾지 못할 곳에 들어가 숨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번갈아 2:2 정도 스코어를 기록했는데 내가 숨을 차례였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해는 떨어졌고 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번에 이긴 사람이 혈투의 승자가 되기로 합의된 상태였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문득, 지금 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입안으로 넘어가던 상추쌈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 그릇을 먹었다. 그러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깜깜한 창밖에 친구가 울면서 서 있었다. 찾았다 이 새끼 어쩌고... 친구가 말했다. 나는 졌다고 했다.


배    어떤 의미로 하는 얘기인가?

박    지금 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    우린 지금 막 밥을 먹고 나오는 길 아닌가.

박    면이었다.


무심코 읽다 처음부터 빵 터졌다. 말을 소설처럼 한다.

밑줄 그은 대화 몇 줄 더.


배    채식을 해볼 생각은 없나?

박    경유차엔 경유를 넣어야 한다. 나는 고기와 마늘로 움직이는 차다.


배    우선 당신에게 독자는 어떤 의미인가?

박    매우 미스테리하고... 특별한 존재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역사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거다. 어느 시대에나 책을 읽는다는 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요즘 출판시장이 죽었다. 사람들이 책을 안 본다, 어쩐다, 그러는데...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책읽기를 좋아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어느 시대든.


박    예술의 잔인함은 거기서 시작된다. 체육으로 치면 100미터를 20초에 뛰는데도... 그만 내가 육상이 좋아가지고, 사랑은 자유니까... 내가 누구보다 육상을 사랑해가지고 30~40년 육상을 하게 되는 결과가 빚어진다는 거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40년 육상을 했다고... 나는 육상을 위해 살아왔고 나보다 육상을 사랑한 사람은 없다고...

배    오 그렇다. 맞다.


박    예전에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내 인생의 책"을 선정해달라고 했는데 그때 내 인생의 책이라고 써서 보내준 게 뭐냐면 <허슬러>였다.

배    그건 도색잡지 아닌가?

박    그렇다. 내 인생의 책, <허슬러>라고 제목 쓰고.. 표지사진도 붙여서... 왜냐면 알라딘에 표지사진이 없을 테니까. 왜 내 인생의 책인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나는 어릴 때 책만 펴면 잠부터 밀려오는 소년이었는데 <허슬러>를 통해 처음으로 책을 골똘히, 끝까지 보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지금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게 알고 보면 다 이 책 덕분이다... (중략) ...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맙소사. 그러고 보니 알라딘에서 그걸 정말 실어줬다. 알라딘 멋지다고 한 번만 말해달라.


배    알라딘 멋지다.

박    고맙다.


궁금해서 글을 찾아보았다. 박민규 사진과 함께 허슬러 잡지가 실렸다. "내 인생의 책은 포르노 잡지 허슬러"라고 기사 제목이 달렸다.

http://www.white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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