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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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외상값에 관한 이야기 두 편, <환상의 빛>과 <하나레이 해변>

<환상의 빛>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하루키의 <하나레이 해변>이 떠올랐다. 이 소설에는 '사치'가 서핑을 하다 상어에게 다리가 물려 죽은 아들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하와이의 해변을 찾는 내용이 있다. 배우자 또는 아들을 잃은 사람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사무실로 나와서 그 사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에 사인했다. 아드님의 시신을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라고 경관이 물었다. 잘 모르겠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어떻게들 하는가요? 화장해서 재를 들고 가시는 것이 이런 경우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라고 경관은 말했다. 사체를 그대로 일본까지 운구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수속도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혹은 카우아이의 묘지에 매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경관은 그렇게 설명했다.

화장해주세요. 유골은 도쿄에 갖고 가겠습니다, 라고 사치는 말했다. 아들은 이미 죽어버렸다. 어떻게 해도 살아 돌아올 가망은 없다. 재든 뼈든 사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녀는 화장 허가 신청서에 사인한 다음, 비용을 지불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밖에 없는데요." 사치는 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도 괜찮습니다." 경관은 말했다.

내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아들의 화장 비용을 지불하는구나, 라고 사치는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무척 비현실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아들이 죽은 장소를 알려주세요. 머물던 곳도. 숙박비를 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호놀룰루의 일본 영사관에 연락하고 싶은데 전화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하나레이 해변>, 「도쿄기담집」 중, 양윤옥 옮김, 비채


"그날 여덟 시쯤 이 가게에 와서 커피를 마셨어요."
"... 그날이라면?"
"저기, 죽은 날 말이에요. 일을 끝내고 여기까지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러 들렀어요."
"... 아."
"특별히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튿날 신문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카운터에 앉아 우리가 하는 바보 같은 얘기를 빙긋빙긋 웃으면서 듣고 있었으니까요."
"여기까지 돌아왔었다구요?"
저는 무심코 그렇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날 밤 집 근처까지 와서 커피를 마셨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깜빡 하고 돈도 없이 들른 것 같았는데, 금방 가져온다고 해서 다음에 올 때 줘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저런, 그럼 그 사람 커피 값은 아직도 안 낸 거네요?"
"점장님, 미안해요, 다음에 가져올 테니까 외상으로 달아둬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으니까 그날 밤에 자살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니까요."
당신이 외상으로 달아놓았다는 돈을 제가 지불하려고 하자 점장은,
"아니에요. 그럴 생각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그런 걸 이제 와서 받을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어요.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전, 절대 받을 수 없어요." 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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