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특강 - 자기 발견을 위한
이남희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48시간이 지난 후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중략)
자, 이제 눈을 뜨십시오. 미리 준비해 둔 노트에다 누구의 '유언장'이라고 제목을 큼직하게 씁니다. 그리고 그 밑에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을 죽 적으십시오. 죽는다고 생각하면 할 말이 많은 겁니다. 그걸 다 적는 겁니다. 후련해질 때까지.
《자기 발견을 위한 자서전 쓰기 특강, 이남희》라는 책은 자신의 유언장을 적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각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유언장을 적는다. 나 윤진수는 29세를 끝으로 죽는다. 살아남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못다한 말들을 적는다. 가슴 한 켠이 찡, 아린다.


(상략) 어른이 된 뒤 어렸을 때 놀던 초등학교 앞 큰길에 가보고는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넓은 길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으로는 4차선 이상의 큰 도로였는데, 가보니 겨우 2차선 정도의 좁은 길이더군요.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의 모습도 그와 같았다. 초등학교 앞의 길이 무척이나 넓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21살엔가 가 본 학교 앞 길은 2차선에 불과한 좁은 길이었다. 기억은 객관적이지 않고, 내가 받아들이는 방법에 의해 왜곡되어 기억되곤 한다. 그래도 내가 가진 유일한 기억이기에 나는 그것을 다시 떠올린다.

몇 명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의 기억 당시 나의 상황과 그 후에 내가 내린 해석에 의해 그 이미지가 변형된 채, 머릿속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기억은 경험을 배반한다.


인간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단위를 보통 퍼스낼리티(personality)라고 부릅니다. 융의 의견으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 하나의 전체로 태어나는 것이지 나중에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정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중략) 똑같은 환경과 경험도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잠재적인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에 따라 정신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후 의식과 자아, 개인 무의식, 콤플렉스, 집합 무의식, 페르소나, 그림자를 살핀다. 인간은 누구나 아내, 친구, 둘째 딸, 며느리, 회사 대리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역할, 즉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며, 자아와 반대되는 무의식 속에 있는 성향,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림자는 무의식으로 밀려난 우리의 성향입니다. 흔히 꿈에서 정체 모를 사람을 만나 두려움에 떠는데,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중략) 내 그림자를 알아보는 손쉬운 방법은 내 주변에서 내가 싫어한는 사람(별다른 이유도 없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격렬함으로)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입니다. (중략)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특질 들을 세세하게 쓴 뒤 읽어보면 그 사람이 가진 것들이 내가 억압하고 있는 그림자의 모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까닭도 없이 싫어한다는 것은 쉬운 조건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싫어한는 일들을 보게 될 때마다, 나의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아야 할테다. 이후 나의 욕망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좋아한느 것들을 통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자서전 쓰기의 첫 걸음이다. 낯선 제목에 어떤 내용을 갖고 있을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책이지만, 글쓰는 방법론, 관찰, 심리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을 연구하고 글로 적도록 지도하는 책. 이를 통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