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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실천문학의 시집 57
허수경 지음 / 실천문학사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폐병쟁이 내 사내'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박혀버렸다. 다른 시들도 좋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빛만은 강렬해 내라도 턱하니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는 사내처럼, 나에게도 이 시가 보내는 안광이 너무도 빛나서 어딘가에 이렇게 적어두지 않고는 힘들것 같다. 뱀이라도 잡아서 먹이고 싶었다는 그녀의 이야기, 그것이 그녀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 또 할머니가 그러했던 모성의 젖줄을 그대로 이은 것이라고 한다. 어찌 그 사내 뿐이겠냐고 한다. 어린나이에 신이 내려 세상 모든 것을 알아버려 감싸 안을 수 밖에 없는 젊은 무당이 떠오른다. 근본적으로 슬픈 무당, 그러나 차갑지 않은, 이제는 젊지도 또 늙어지지도 않는 어떤 근원적인 존재, 신내림, 그런 시선이 보인다. 시인이 감당해야했던 세상도 꽤 무거웠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