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상상력을 채우는 패러디

율려낙원국 2 - 낙원 건설기
김종광 지음 / 예담 / 2007년 9월

김종광 장편소설, 율려낙원국 1권(도적포획기), 2권(낙원건설기)

--------------------------------------------------------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은 조선 당대에도 유행하였고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며 읽었지만, 현대에도 그런 특성은 다르지 않다. 많은 현대 작가들이 이 소설에 자신의 상상력과 현대 사회의 모습을 더해  패러디하여 새롭게 창조하였다. <허생의 처>, <허생전을 읽는 시간> 등 여러 작품이 상당한 수준과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작품들을 매우 재미있어 하며 읽었다. 또한 고전소설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고전작품들도 현대적으로 재창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종광이 2권의 장편소설로 창작한 [율려낙원국]이라는 작품 역시 <허생전>에 대한 패러디다. 원작 <허생전>에서 허생은 매점매석의 방법으로 수많은 돈을 벌였고, 그 돈을 이용하여 변산의 도적을 찾아가 그들에게 소 한 마리와 아내 하나씩을 얻게 한 후 '사문도(沙門島)와 장기도(長岐島)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여 살게 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부분을 소설로 만든 것이다. 돈을 번 허생이 변산 도적을 소탕하여 새로운 섬에서 '율려낙원국'을 건설하는 이야기와 건설 후 1년 동안 이 나라의 기틀을 잡는 동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것이다.

흔히 허생의 성품이 어떠했을까 등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허생을 선한 영웅과 착한 권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다만 영웅주의적 발상을 가진 한 사람으로 만들고, 거기에 더해 여러 도적들의 삶과 고뇌, 충돌의 일을 소설로 엮었다. 그 사이에 권력관계도 드러나고, 변화시키기 어려운 인간적인 모습도 그대로 드러난다. 허공속에 막연히 떠 있던 허생전 내면의 이야기를 작가가 채워넣었다고 하겠다.

교사라면 허생전 다시쓰기나 상상력 발휘하기 수업으로 이용할 만 하고.... 고전에 대해 좀 알거나 관심 있는 싶은 분들은 고전의 변형에서 오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허생전>이 약간은 스타일 구긴 것 같아 좀 불편하긴 하다. ^^

독자의 역할이 필요한 책

만원짜리는 줍지마라 - 눈앞의 달콤한 유혹
야스다 요시오 지음, 하연수 옮김 / 흐름출판 / 2007년 1월

이 책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당장 줍고 싶은 인생의 만원짜리들을 과감히 줍지 말고 보다 먼 수십배 수백배 이익을 보라는 것.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투자하고 변화하라는 것.

 
여기에서 말하는 만원짜리란 '잦은 지각으로 신뢰를 잃게 하는 10분의 늦잠', 준비된 비전과 전망을 놓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연봉 인상을 내세운 이직 제안', S라인도 건강도 날려버릴 수 있는 '운동 후의 야식', 보람도 성취감도 앗아간 채 일을 따분하게 만들 수 있는 '좋아하는 일보다 안정된 일 찾기',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원가를 낮추는 질 낮은 재료', 관계악화로 주변사람을 잃게 하는 '화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말' 등을 나타낸다. 

 
완전히 좋은 것으로만 가득 채워진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책이 없다고 한탄만 하면서 시간만 보내며 책을 안 읽을 수도 없는 일. 그러니 나는 한 책에서, 또는 한 강의에서 한두가지만 잘 배워도 성공이라는 자세로 책을 읽는다. 이 책 전체 내용이 그리 튼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원짜리의 예로 든 저런 예들은 기억해 둘 만 하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들을 다시한번 기억하면서 반성해 볼 만 하니까.

 
그리고 당장의 이익을 탐하기 보다 3년, 5년후를 내다보면서....젊은이라면 당장 돈을 모으는 것만을 생각하기 보다 당장 배우는 데에, 실력을 쌓는 데에 투자하여 미래의 자신을 더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도 기억해 둘 만 하다.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하고, 돈을 모으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내가 돈을 좀 더 쓰더라도 배우는 데에 비용을 많이 아끼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보았다.

 
보통 경제경영서는 변화를 외친다. 물론 이 책도 무조건 변화하라고 말하지만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본질인가 유행인가를 따져서 본질은 움켜쥐고 유행은 버리며 변화하라고 말한다. 흔히 변화, 변화!!! 만을 외치는 수많은 책과 같이 이 책 역시 이것에 치중하고 있다. 본질을 잡으라는 이야기는 책 맨 끝에 한 페이지에서만 하고 있다. 여느 책처럼 아쉬움을 가진 가벼운 책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 '본질'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독자가 그 빈것을 채우는 독서를 할 필요가 있다.

실행이 관건

12개의 전략 메모 - 100명의 머리를 이기는 짜릿한 전략 이야기
박종안 지음 / 흐름출판 / 2007년 7월

아무 것도 모르는 평사원 출신 한 여성이 창조그룹 후계자 그룹에 뛰어들어 성공하는 이야기. 교수 출신 아버지가 남긴 12개의 메모를 활용하여 '창조'를 내세운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는 이야기. 이야기 곳곳에 손자병법의 구절을 이용하여 손자병법을 실제 경영에 이용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의 권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고전이 오늘날 읽힌다면 이런 식으로 읽혀야 하지 않겠느냐며 읽기를 권했다. 손자병법을 읽으라면 읽지 않겠으나, 소설식 구성 안에 손자병법을 넣으니 매우 흥미롭더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글쎄 나는 손자병법과 이 이야기의 긴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어도 손자병법이 어떤 책인지, 어느 정도의 책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자가 그대로 들어가고, 그 밑에 번역이 있따고 해도 책의 내용과 동떨어진 듯 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평은 놀라웠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실천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것을 그냥 한 번 쓱~ 보고 만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종류의 경제경영서가 모두다 천편일률적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내용대로 실행해 보려고 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아직 여기에 쓰인 전략들을 어느 곳에든 실행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않은 것이다. 내가 이 전략들을 실행해 옮기는 날 나는 다시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함부로 어떤 책이라 말하기가 송구한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매일 쏟아지는 책은 많지만, 정말 좋은 책이라 선뜻 주위 사람에게 권할 책은 많지 않다. 읽은 책은 여러 권이라도 그 책이 정말 내 마음을 움직이고, 나를 숙연하게 한 책도 많지 않다.
나는 어제 오늘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읽었다. 우연히 받은 책인데,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빠져들어 읽었다.

젊은 정신의학 전문의이자 박사가 결혼 10년만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지 20년이 훌쩍 지난 후 자폐진단을 받아 손자 샘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런데 작가의 이런 이력은 이 책을 읽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고생 많이 한 사람이니 뭐... 인생 성찰을 적었겠지 하며 선입견을 키우면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이 책을 넘겨버릴 생각을 은연중에 키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꾸미지 않은 실제 인생 그대로가 어떤 것인지, 그 인생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느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스승을 만난 것 같다.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아니 근 몇 년간 내가 읽은 책 중에 이를 뛰어넘는 책을 나는 선뜻 들 수 없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