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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아픈 의사입니다 - 견디는 힘에 관하여 정신과 의사가 깨달은 것들
조안나 캐넌 지음, 이은선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0월
평점 :
작가는 늦은 나이에 의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남들보다 늦다는 이유로 '와일드카드' 신세가 되지만 작가는 항상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한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로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어쩌면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과중한 업무를 버티게 해준 것은 환자에 대한 인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정 넘치는 의사이기에 작가는 환자들과의 헤어짐을 힘들어한다. 암에 걸려 더이상 손 쓸 방도가 없는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자신의 살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을 해결해주는 건 일시적인 해결책인 모르핀 뿐이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픔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 다시 선택권을 쥐려고 한다. 치료를 거부하는 것. 치료를 거부하면 그들은 속절없이 죽음의 문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들의 선택이다. 스스로의 미래를 죽음으로 결정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선택권'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작가는 후에 정신과로 길을 정한다. 그 곳에는 마음이 다치고 정신에 병이 생긴 많은 환자들이 있다. 한 환자는 자아 분열과 환청으로 인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은 뒤 퇴원 후 자살을 한다. 그 때,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말한다.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은 암이나 기타 다른 병을 앓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말이다. 나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 어리석지만 그 사람이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그들은 병에 걸린 것이고, 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소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미처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나처럼 정신병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아직도 사회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린 환자들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더 큰 상처를 받는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단지 '선택권'이 없는 것 뿐인데.
어쩌면 수련의로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일 수 있었는데, 사람을 살리는 것은 메스나 심장 제세동기와 상관이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33p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알렉스는 심장마비나 대장암으로 죽은 사람처럼 선택권이 없었는데, 토요일 저녁에 집에 앉아서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고 착각하는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2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