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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음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19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정현종 옮김 / 민음사 / 1973년 12월
평점 :
품절
'불과 얼음'이라는 시에서 프로스트는 인간의 내면 깊이 잠재되어 있는 두 가지 본질적인 악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같이 타오르는 욕망, 얼음같이 차가운 증오심! 시인의 오랜 경륜 속에서 인간을 깊이 탐구한 후에 내린 결론인 듯 싶다. 그렇지 않고 그의 젊은 날에 이와 같이 인간 심리를 표현했다면, 그는 진정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것이다.
그는 대체로 자연 속에서 인간 정신을 노래했고 때로는 찬미하기도 하며, 인간의 의지를 수반하기도 하며,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 시에서는 곧바로 인간의 내면을 직시하며, 패역한 인간의 본성을 놓지지 않고 있다.
불과 얼음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마치 인간의 양면성을 나타내듯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어내고 있다. 세상은 불로 멸망한다. 불과 같은 욕망이기에 불로써 망한다. 그러나 한번 더 멸망한다면 얼음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얼음같이 차갑고 냉정한 증오심도 그만한 힘이 잇기 때문이다. 간결한 필치 속에서 그는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불로써 멸한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바이다. 프로스트는 그 원인을 인간이 지닌 욕망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자 시인은 다윗 역시 같은 견해이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고백한 그는 인간안에 잠재된 욕망을 결코 과소 평가하지 않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욕망과 무섭도록 냉정한 증오감. 이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다윗이 그러했다면 모든 사람들 역시 틀림없이 그러하다.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파악한 프로스트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잠재된 인간 본성을 꺾지 않는다면 멸망뿐이다. 이 시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책임일 것이다. 청교도의 전통적인 메시지를 한 번 쯤 되새겨 봄직하다. Perish or Rep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