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는 등에서 가시를 하나 뽑았어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늘 등 뒤에 얹은 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가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가슴 아팠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지요. 자기를 보호하는 데 썼던 가시를 이제는 큰고니를 위해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가시는 고슴도치의 마음을 아는 듯 은은하게 반짝거렸습니다.
<바느질하는 고슴소치> 43p
먹이 찾기 경쟁은 힘들지만, 춤 추는 것은 정말 자신 있는 큰고니.
달리기는 만년 꼴찌이지만, 자신의 바늘로 다른 이들의 다친 별을 꿰매어줄 수 있는 고슴도치.
달리기를 가장 잘 하는 재능도, 먹이를 빠르게 찾는 재능도 모두 훌륭한 재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거기서 1등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느질하는 고슴도치>는 누구나 가슴에 반짝이는 별을 품고 있다는 걸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세상의 천편일률적이고 일방적인 기준의 경쟁 속에서 금이 가고, 부서질 때가 있어요. 별이 있는지조차 깨닫기도 전에요. 오직 내 아이가(또는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두고 거기에 매몰될 때, 웃음을 잃지 않기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나에 대한 실망과 좌절 더 나아가 분노와 슬픔에 빠졌을 때,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내가 물에 빠졌었구나. 이 물이라도 마셔야겠어." 고슴도치가 펑펑 울고 난 후 꺼낸 이 대사가, 우리를 도와줄 결정적인 힌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련하게 감정을 꺼내고 난 후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왜 꼭 그래야 하는 거지?' '이렇게 계속 쭈그러져 우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게 뭘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비로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진심으로 더 잘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밤이면 더 반짝이는 고슴도치의 공방처럼 나의 아이디어 공방을 가동시켜보는 겁니다.
고슴도치 덕분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을 다시 가슴에 채워 넣은 큰고니는 푸른 광채를 되찾고 날아갑니다. 저는 이 책에서 특히 고슴도치의 재능이 '타인을 이롭게 하는 재능'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감응하면서 치유와 성장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어린이책 작가들이 이 역할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유치원생만 되어도 스스로 알아요. 누가 줄넘기를 나보다 잘 하는지, 누가 그림을 나보다 잘 그리는지. 본격적으로 경쟁의 세계에 입문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 어린이의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미리 미리 다정하게 붙들어 꿰어놓아줄" <바느질하는 고슴도치>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혹여 시도하는 용기와 과정의 노력보다 우열만 따지는 비교에의 노출에서, 어린이뿐 아니라 저를 포함한 우리 부모 자신의 마음부터 잘 웅크려 '보호' 해 보자구요. 분명 우리의 손 안에도 '다용도 가시'가 있습니다.
그때야 고슴도치는 알게 되었지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바느질이라는 걸 말이에요.
<바느질하는 고슴도치> 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