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방일지 - 내 마음을 알고 싶은 날의
이명수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스트레스 만렙상태. 급기야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갖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미칠듯 들끓어 혼자 내 가슴팍을 꽝꽝 내리쳤을 때,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며 생각했다. '아.. 상담치료를 받아야 할 건 나구나.'

당시 내게 필요한 건 집요하게 꿰뚫어보는 투시도보다 '조감도'였다. '괜찮아♡'를 가훈으로 써붙이고 양육과 일상의 방향기로 삼았다. 티끌만한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터널을 지나는 방법을 아는 지인의 조언을 얻은 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가는 중이다.

그 틈에 기다리고 있던 책 한권이 도착했다. 얼마전 때마침 참 신기한 타이밍으로 내게 똑똑 문을 두드린 책이었다. 누구나 어떤 주제로든 중대한 고민과 문제에 직면하는 때가 온다. 걱정, 분노, 좌절, 슬픔, 두려움, 무력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과정은 최종적으로 우울로 귀결되지 않던가. 제목부터 트렌디하다. 호기심을 넘어 진심으로 읽고 싶은 책이었다.


<우울해방일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경기도 자살예방센터의 이명수 센터장이 그동안 이다. 책의 목차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고민들이 모여 있다. . 처음부터 끝까지 문체가 편안하면서도 담백하다. '(8p)이라는 표현이 꼭 맞는 느낌이다.


'문제를 대상화하기'는 치료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이든 제일 중요한 첫걸음은 그 문제를 살짝 떨어져서 보는 것입니다.<우울해방일지> 6p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관점을 바꾸어 해소하는 것이다"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해준다.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고민이 애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점차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 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을까에만 노력하자는 힘을 얻었다. 약점 뒤에 가려진 다른 강점을 품은, 내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이 보여줄 무한한 가능성에 더 집중할 것이다. 오늘도 잘 해낸 내 아이와 나를 기꺼이 칭찬해주고 싶다. 시간은 반드시 나의 편이고(설령 시간으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훗날 나에게 큰 경험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다져간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생각해보세요. 가시거리가 30m이고 그 너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시야가 허용하는 만큼 전진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안개 저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중략)··· 안개의 속성은 보이는 만큼 가면 또 다른 30m의 시야가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만큼만 계속 가다 보면 해가 뜨고, 해로 인해 공기가 따듯해지면 안개가 슬며시 걷혀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게 됩니다.<우울해방일지> 31p


구체화된 걱정거리는 역설적으로 걱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비가 필요한 사항일 뿐입니다.<우울해방일지> 242p



두번째는, 책의 목차처럼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심리문제 사례를 통해, 당장 나와는 관계없는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언제가 내게 또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막연히 "힘내!"라는 위로의 말대신, 문제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법을 알려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무기력에 빠져있는 친구에게는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주어, '생각의 프레임을 능동기어(25p)'로 바꿀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다. 어느 날 부정적인 자기평가에 빠지는 날이 온다면 "정말 그게 맞을까?"라고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보는 게 좋다. 또 평소에 말하기의 3원칙('사실을 말하기, 필요할 때 말하기, 나이스하게 말하기(=궁금할 때만 질문하기)(161p~)')을 실천하다보면,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의사소통법을 마스터하는 셈이다.


인간관계를 정리해나가는 데 있어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절대적 규칙 중 하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쳐내는 것입니다.···(중략)··· 어떤 방식이건 당장은 어색하고 힘들지라도 그것은 연습을 통해 익숙해져야 하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우울해방일지> 184p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려워요"라는 말은 상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중략)··· 누구나 평가를 당할 수 있지만 평가를 할 때에는 평가받는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공식적으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략)··· 의견은 그냥 의견의 형태로 놔두어야 합니다.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의견을 굳이 평가로 둔갑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우울해방일지> 190~191p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행동으로 교정하기 위해서는 잘못한 행동에는 반응하지 않고 잘한 행동은 매우 칭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선택적 무관심'이라고 부르며 이는 매우 강력한 행동교정의 효과가 있습니다.<우울해방일지> 204~205p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은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으며, 안전에 대한 강박은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 약속도 잘 지켜야 하고 정리 정돈도 잘 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정 수준의 강박 성향은 개개인의 성취에 도움이 되고 삶의 완성도를 높여줄 수 있습니다. 비단 강박 증상뿐 아니라 신경적 증상의 대부분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가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가 아니면 촉진제 역할을 하는 가에 대한 이슈입니다.<우울해방일지> 284p


마지막으로, 약물치료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고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성격이 예민한 것과 우울로 인해 예민한 것을 구분해야하는데 성격 탓이겠거니 방치하게 되면 이차, 삼차적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관점을 전환하고 행동을 변화시키기는 것이 '문제에서 해소되는' 본질적인 방안이라 할지라도, 고유의 성격 반응이 아닌 '증상'의 경우에는 '증상개선'을 위한 약물치료가 선행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터널을 깜깜합니다. 그런데 깜깜한 터널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면 혹시나 저 멀리 있는 출구의 빛을 감지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처방을 통해 수면을 개선하고 불편한 감각을 안정화하며 더 나아가 마음의 화를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다면 선글라스를 벗고 이를 통해 혹시나 못 보고 지나갔고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터널은 캄캄하지만요.<우울해방일지> 86p


항우울제가 성격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성격의 탈을 쓴 우울 증상'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우울해방일지> 152p


타인의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듣는 사람도 지치진 않을까. <당신이 옳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트라우마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나 사회복지사, 시민운동가 등 중에 고통의 전이로 있어 심리적으로 탈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다루는 일은 공감과 객관성 사이에서 투철한 균형감으로 아주 섬세하게 타인을 돕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을 통한 직접경험같은(?) 간접경험이 오늘 각자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을 지나갈 수 있을 힌트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삶은 없다는 '관점'을 단단히 붙들어매면서.


이 책을 쓴 저 역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고 별거 아닌 것에 짜증을 냅니다. 또 충동에 굴복하여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얻는 축복이라고 한다면 병원에 오시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점검하며 재정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우울해방일지> 314p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