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침제의 분풀이는 실로 뼈에 사무쳤다. 형벌을 받은 육체는 재가 되어 날아갔지만 혼은 고통으로 떨림이 멎지 않았다

어째서 비춘셩은 갑자기 적연을 언급했을까?

"그럼 산 사람은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게 하고… 죽은 사람은 개죽음당한 채로 내버려 두란 말이야?"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빨리 나가라며 그를 재촉했다. 적연에 더 머물렀다가는 무언가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퍼뜩 스쳤다. 이런 ‘자각몽’은 항상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굳이 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 무엇과 만나게 될지 두고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를 검에 가둔 자는 또 누구인가?

하지만 살갗 아래에 어른거리는 혈관을 얼핏 보았을 뿐인데, 몇천 년 만에 느닷없는 갈증이 치밀었다

그런데 손바닥이 칼날을 받친 순간, 그의 등골에서 빼낸 이 검에 단번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검신에 새겨진 홈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불빛이 스치는 순간, 빛이 비친 검날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눈동자 한 쌍이 보였다. 불에 타오르며 붉은빛으로 물든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풋 웃고 있는 그 눈에는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온유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인마는 영성을 지닌 다른 물건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이 두 분은 재빨리 생각으로 서로를 욕했다.

위기의 순간에 진심이 나오는 법. 다정다감하던 쉬엔지와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성령연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동시에 평화조약을 찢어발겼다.

그가 하는 말은 촘촘한 그물처럼 교묘하면서도 간단하게 상대를 뒤덮으며 일종의 착각을 일으켰다. 마치 그가 온 마음을 쏟아 자신을 총애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 비통함,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전부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천적 영물은 콧대가 높아서 다른 종족과 거의 왕래가 없으니, 보통은 후사를 보기 힘들어. 보통 이렇게 어린 요족은 동족에게 감싸여 보호받지 인간 세상에서 먼지투성이가 되도록 구르지 않는다. 족장이라고 자처하는 걸 보면 필시 무리에 변고가 생겨 어릴 때부터 돌봐주는 이가 없었을 터.’

그는 무심결에 저 피 같은 물이 고치처럼 응결되어 자신을 감싸, 눈도 귀도 막은 채 영겁의 세월이 흐르도록 자신을 숨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몸을 숨길 수 있는 한 치의 땅도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안식, 여유, 휴식…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망념일 뿐이었다.

그 사람을 똑똑히 본 순간, 불현듯 어떤 격렬한 감정이 쉬엔지를 덮쳤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탄과 미칠듯한 환희였다. 두 개의 감정이 뒤엉키자 영혼까지 뒤따라 전율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여한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 같기도 했고, 가없이 어두운 밤에 오래도록 갇혀 있다가 마침내 한 줄기 새벽빛을 엿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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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신 건지, 누구랑 마신 건지 알 수도 없다. 어쨌든 저 혼자 고주망태로 취해 나를 불러낸다는 사실이다.

일말의 양심이나 죄책감은 그에게도 있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저 혼자 술을 마시고, 내일 학교에 가야 되는 나에게 전화를 건 것에 대해서 말이다.

녀석이 흘려보내는 목소리는 딱 지금의 계절과 같다. 쓸쓸하고 외로운 늦가을.

아무리 그가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고 한들, 그럼에도 나는 이욱찬에게 한없이 약했다.

그냥… 늘 이렇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욱찬은 이욱찬 나름대로, 나는 그의 옆에서, 때때로 쓰레기통 역할을 해 주면서.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깨워 온 감정을 밟으며 종착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 종착점이 동정인지, 애정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일말의 죄책감이 남아 있었는데 이욱찬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불이 타올랐다.

성격에 높낮이가 없다. 그리고 다정하고… 나쁜 녀석은 아니다.

관계라는 게 마냥 웃고 떠들고,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그 정도로 깊게 사귀고 인연을 이어 가는 것도 극소수였다.

나에게 잘해 주고, 나를 특별하게 대해 주던 정현우가… 왜 그런 말을 던지고 간 걸까.

그는 외로움을 추위라는 무기로 감춘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익숙한 것은 무섭다. 늘 보아 오고, 불러 왔던 것들. 사라져도 잔상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욱찬에게 내가 그런 존재일 거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와 과거를 건드려도 되었다. 이욱찬 부모님, 형, 누나… 사실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러하다.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나는 이욱찬이 나쁜 새끼라는 걸 알지만, 아주 예전부터 알아 왔지만 그렇다.

눈에 보이면 짜증 나고, 그렇지만 대화를 나누고 싶고, 안 보이면 걱정된다.

정말 걱정되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걸까. 단지 유흥거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하는 사람의 사정은 생각지도 못하고.

인정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나의 첫사랑은 결국 이 겨울바람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고여 있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갈 거다. 그리고 그 겨울바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정만이 남아 있겠지.

술로 모든 걸 비운다. 모든 게 다 술 때문에 벌어졌던 건데, 아빠의 폭력적인 성향도 술 때문에 빛을 보였고….

내 마음을 빼앗긴 것도 아닌데, 고작 라면 한 젓가락뿐인데. 자존심이 상했다.

그냥 묵묵히 살아가겠지. 제대로 대화조차 해 본 적 없는 형을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말이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도 없고 누나도 방황해 제대로 들어온 적 없던 집에 이욱찬을 버리고 그대로 나가 버린 형을 말이다.

벼랑 끝에 몰리면 어떤 사람이든 은인처럼 보이고,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듯이 두 사람도 그랬다. 그나마 가족이라고 할 만한 상대가 두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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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제의 분풀이는 실로 뼈에 사무쳤다. 형벌을 받은 육체는 재가 되어 날아갔지만 혼은 고통으로 떨림이 멎지 않았다

어째서 비춘셩은 갑자기 적연을 언급했을까?

"그럼 산 사람은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게 하고… 죽은 사람은 개죽음당한 채로 내버려 두란 말이야?"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빨리 나가라며 그를 재촉했다. 적연에 더 머물렀다가는 무언가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퍼뜩 스쳤다. 이런 ‘자각몽’은 항상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굳이 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 무엇과 만나게 될지 두고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를 검에 가둔 자는 또 누구인가?

하지만 살갗 아래에 어른거리는 혈관을 얼핏 보았을 뿐인데, 몇천 년 만에 느닷없는 갈증이 치밀었다

그런데 손바닥이 칼날을 받친 순간, 그의 등골에서 빼낸 이 검에 단번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검신에 새겨진 홈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불빛이 스치는 순간, 빛이 비친 검날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눈동자 한 쌍이 보였다. 불에 타오르며 붉은빛으로 물든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풋 웃고 있는 그 눈에는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온유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인마는 영성을 지닌 다른 물건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이 두 분은 재빨리 생각으로 서로를 욕했다.

위기의 순간에 진심이 나오는 법. 다정다감하던 쉬엔지와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성령연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동시에 평화조약을 찢어발겼다.

그가 하는 말은 촘촘한 그물처럼 교묘하면서도 간단하게 상대를 뒤덮으며 일종의 착각을 일으켰다. 마치 그가 온 마음을 쏟아 자신을 총애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 비통함,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전부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천적 영물은 콧대가 높아서 다른 종족과 거의 왕래가 없으니, 보통은 후사를 보기 힘들어. 보통 이렇게 어린 요족은 동족에게 감싸여 보호받지 인간 세상에서 먼지투성이가 되도록 구르지 않는다. 족장이라고 자처하는 걸 보면 필시 무리에 변고가 생겨 어릴 때부터 돌봐주는 이가 없었을 터.’

그는 무심결에 저 피 같은 물이 고치처럼 응결되어 자신을 감싸, 눈도 귀도 막은 채 영겁의 세월이 흐르도록 자신을 숨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몸을 숨길 수 있는 한 치의 땅도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안식, 여유, 휴식…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망념일 뿐이었다.

그 사람을 똑똑히 본 순간, 불현듯 어떤 격렬한 감정이 쉬엔지를 덮쳤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탄과 미칠듯한 환희였다. 두 개의 감정이 뒤엉키자 영혼까지 뒤따라 전율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여한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 같기도 했고, 가없이 어두운 밤에 오래도록 갇혀 있다가 마침내 한 줄기 새벽빛을 엿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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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양심이나 죄책감은 그에게도 있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저 혼자 술을 마시고, 내일 학교에 가야 되는 나에게 전화를 건 것에 대해서 말이다.

녀석이 흘려보내는 목소리는 딱 지금의 계절과 같다. 쓸쓸하고 외로운 늦가을.

아무리 그가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고 한들, 그럼에도 나는 이욱찬에게 한없이 약했다.

그냥… 늘 이렇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욱찬은 이욱찬 나름대로, 나는 그의 옆에서, 때때로 쓰레기통 역할을 해 주면서.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깨워 온 감정을 밟으며 종착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 종착점이 동정인지, 애정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일말의 죄책감이 남아 있었는데 이욱찬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불이 타올랐다.

성격에 높낮이가 없다. 그리고 다정하고… 나쁜 녀석은 아니다.

관계라는 게 마냥 웃고 떠들고,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그 정도로 깊게 사귀고 인연을 이어 가는 것도 극소수였다.

나에게 잘해 주고, 나를 특별하게 대해 주던 정현우가… 왜 그런 말을 던지고 간 걸까.

그는 외로움을 추위라는 무기로 감춘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익숙한 것은 무섭다. 늘 보아 오고, 불러 왔던 것들. 사라져도 잔상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욱찬에게 내가 그런 존재일 거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와 과거를 건드려도 되었다. 이욱찬 부모님, 형, 누나… 사실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러하다.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나는 이욱찬이 나쁜 새끼라는 걸 알지만, 아주 예전부터 알아 왔지만 그렇다.

눈에 보이면 짜증 나고, 그렇지만 대화를 나누고 싶고, 안 보이면 걱정된다.

정말 걱정되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걸까. 단지 유흥거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하는 사람의 사정은 생각지도 못하고.

인정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나의 첫사랑은 결국 이 겨울바람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고여 있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갈 거다. 그리고 그 겨울바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정만이 남아 있겠지.

술로 모든 걸 비운다. 모든 게 다 술 때문에 벌어졌던 건데, 아빠의 폭력적인 성향도 술 때문에 빛을 보였고….

내 마음을 빼앗긴 것도 아닌데, 고작 라면 한 젓가락뿐인데. 자존심이 상했다.

그냥 묵묵히 살아가겠지. 제대로 대화조차 해 본 적 없는 형을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두고 말이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도 없고 누나도 방황해 제대로 들어온 적 없던 집에 이욱찬을 버리고 그대로 나가 버린 형을 말이다.

벼랑 끝에 몰리면 어떤 사람이든 은인처럼 보이고,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듯이 두 사람도 그랬다. 그나마 가족이라고 할 만한 상대가 두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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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제의 분풀이는 실로 뼈에 사무쳤다. 형벌을 받은 육체는 재가 되어 날아갔지만 혼은 고통으로 떨림이 멎지 않았다

어째서 비춘셩은 갑자기 적연을 언급했을까?

"그럼 산 사람은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게 하고… 죽은 사람은 개죽음당한 채로 내버려 두란 말이야?"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빨리 나가라며 그를 재촉했다. 적연에 더 머물렀다가는 무언가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퍼뜩 스쳤다. 이런 ‘자각몽’은 항상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굳이 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 무엇과 만나게 될지 두고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를 검에 가둔 자는 또 누구인가?

하지만 살갗 아래에 어른거리는 혈관을 얼핏 보았을 뿐인데, 몇천 년 만에 느닷없는 갈증이 치밀었다

그런데 손바닥이 칼날을 받친 순간, 그의 등골에서 빼낸 이 검에 단번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검신에 새겨진 홈을 따라 피가 흘러내렸다.

불빛이 스치는 순간, 빛이 비친 검날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눈동자 한 쌍이 보였다. 불에 타오르며 붉은빛으로 물든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풋 웃고 있는 그 눈에는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온유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인마는 영성을 지닌 다른 물건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이 두 분은 재빨리 생각으로 서로를 욕했다.

위기의 순간에 진심이 나오는 법. 다정다감하던 쉬엔지와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성령연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동시에 평화조약을 찢어발겼다.

그가 하는 말은 촘촘한 그물처럼 교묘하면서도 간단하게 상대를 뒤덮으며 일종의 착각을 일으켰다. 마치 그가 온 마음을 쏟아 자신을 총애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 비통함,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전부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천적 영물은 콧대가 높아서 다른 종족과 거의 왕래가 없으니, 보통은 후사를 보기 힘들어. 보통 이렇게 어린 요족은 동족에게 감싸여 보호받지 인간 세상에서 먼지투성이가 되도록 구르지 않는다. 족장이라고 자처하는 걸 보면 필시 무리에 변고가 생겨 어릴 때부터 돌봐주는 이가 없었을 터.’

그는 무심결에 저 피 같은 물이 고치처럼 응결되어 자신을 감싸, 눈도 귀도 막은 채 영겁의 세월이 흐르도록 자신을 숨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몸을 숨길 수 있는 한 치의 땅도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안식, 여유, 휴식…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망념일 뿐이었다.

그 사람을 똑똑히 본 순간, 불현듯 어떤 격렬한 감정이 쉬엔지를 덮쳤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탄과 미칠듯한 환희였다. 두 개의 감정이 뒤엉키자 영혼까지 뒤따라 전율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여한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 같기도 했고, 가없이 어두운 밤에 오래도록 갇혀 있다가 마침내 한 줄기 새벽빛을 엿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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