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 - 나이 먹어서도 절대 차분해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안내서
캐슬린 네이도 지음, 장혜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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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무엇인가? 다들 비슷한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어린아이(주로 남아)가 교실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돌아다니거나 소란을 피우는 모습. 그러나 모두가 쉽게 떠올리는 이 장면을 잠시 내려두고, 우리는 시선을 조금 멀리 돌려 볼 필요가 있다. 과연 ADHD는 어린 소년들에게만 생기는 문제인가? 또는, 유소년기가 지나가면 씻은 듯 싹 사라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치료사들 중 절반은 일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블랙 조크다. 나도 치료사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ADHD 성인, 또는 노인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이게 ADHD 성인을 더 힘들게 만들고야 만다. 원서에 비해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번역된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 그야말로 성인 ADHD 환자들의 심정을 완벽히 대변해주는 제목이다.

 

이런 면에서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는 내게 두 가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째로 사실 나는 최근에서야 내가 ADHD이거나 거의 그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꽤 당황하고 좌절했었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떤 해답을 얻은 느낌이었다. 학창시절부터 대학 생활까지도 성적은 장학금을 받을 만큼 좋았으나 한 자리에 꾸준히 앉아 집중하는 일에는 재능이 없었다. 바짝 외워 시험을 치면 좋은 점수를 받았으나 매일 꾸준히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내는 일은 너무나도 괴로웠고, 할 일 여러 개가 있으면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이 일 저 일을 손대다가 종래에는 모두 놓아버리고 한탄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다시 벼락치기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걸 더 이상 내 인생의 실패한 부분이라거나 나의 커다랗고 고칠 수 없는 결함이라고 매도하고 떼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니, ADHD 환자들에게 이보다 더한 희소식이 어디 있을까. 해당 도서에서는 무려 노인의 은퇴까지도 다루고 있는데, 완독 후에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어려워 보이기만 했던 산만한 인생을 어쩌면 나름대로 평탄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에서는 ADHD라는 불청객을 동반자로 맞이한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해결법을 제시하지만 본문에서 하나하나 다루자면 서평을 하루 종일 써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재미로 남겨두기로 하고, 두 번째 충격을 말하기 전에 인상깊었던 부분을 하나 짚고 넘어가겠다.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의 제3장에서는 미국의 ADHD를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p. 39 어떤 문화권에서는 다른 문화권보다 ADHD로 살아가기가 훨씬 힘들다. (중략) 이곳 미국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과업을, 목표에 적합하게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두 우수한 실행기능이 필요한 일이지만 ADHD를 안고 사는 사람은 흔히 이런 기술이 부족하다.

 

이 페이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과업을 목표에 적합하게 수행하는 것. 감히 장담하건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심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상대적으로 정신과 문턱이 높은 나라다. 사회적 시선,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부정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치는 케이스가 굉장히 많다. 그렇게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고 ADHD로 인한 어려움을 끌어안은 채 성인이 되면, 아마 나처럼 이 책을 붙잡고 맞아! 바로 이게 내 이야기야! 하고 마구 신기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저자는 미국의 ADHD 전문가지만 어쩌면 이 책이 정말로 필요한 건 한국의 ADHD 환자들, 그리고 치료사들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도서를 번역해 출판해주신 위즈덤하우스에 감사드린다.

 

내게 이 책이 충격이었던 점 두 번째는 해당 도서가 성인, 더 나아가서는 노인의 ADHD에 관해 굉장히 심도있게 다루고 있으며 구체적인 생활습관의 변경이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했는데, ADHD는 물론이고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등 흔히 학령전기~학령기 아동의 문제로 치부되는 장애들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성인이나 노인의 케이스는 접한 적도 배운 적도 없다는 것을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유창성장애나 신경학적 문제(치매, 실어증 등)는 성인의 케이스도 충분히 다루었으나 ADHD는 진단과 중재, 치료가 대부분 아동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치료는 'ADHD를 가진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보다는 'ADHD 아동의 학령기 학습/행동교정'에 가까웠다. 나는 왜 전공자이면서도 그토록 성인 ADHD에 무지했을까? 대학에서 4년이나 배운 치료사가 이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ADHD를 모른 채 성인이 되며 또 얼마나 많이 집중력이 부족하다, 끈기없다, 산만하다고 비난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p. 140 뇌 기반 ADHD 중심 치료 면담에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법을 이용해 문제를 계속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체계를 잡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 그 주에 연습할 주제, 목표, '과제'를 글로 요약해준다

* 이전 면담을 검토해 연속성을 유지한다

* 딴생각하느라 면담이 옆길로 새고 있다면 토론하던 주제로 다시 이끌어준다

(생략)

 

발췌 부분을 보자. 이처럼 해당 도서에서는 단순히 'ADHD가 있으면 이렇게 살아갑시다'를 넘어서서 꽤 전문적으로 경도신경인지장애와 ADHD를 구별하는 방법, 치료 면담의 체계, 각성제 치료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ADHD가 있다면 이런 치료사를 선택하라는 정보가 담긴 부분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치료사들에게 이런 치료사가 되라는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당 도서에 흥미를 느껴 이 서평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 나와 같은 관련 치료사나 전공자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두 번, 세 번 정독하시라고 강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은 치료사는 읽기 전보다 훨씬 좋은 치료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든다. 물론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상냥하게 쓰여진 책이니 비전공자 분들, ADHD를 갖고 있거나 ADHD를 가진 가족, 배우자, 친구와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도 당연히 추천한다.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의 또다른 장점 중 하나는 해당 도서에서 해결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수많은 성인/노인 ADHD 환자들의 케이스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비단 ADHD 환자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현대인이 자신의 현실을 곱씹으며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이런 괴로움을 겪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걸까? 독자는 해당 사례들을 읽으면서 이입하고, 공감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많은 진단항목과 부록으로 자가 보고 설문지, 약물 부작용 추적 양식 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 ADHD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너무나도 사려깊고 상냥하게 쓰인 책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길고 말 많은 서평이지만, 요즘 세상에 아직도 종이책 읽는 게 낙인 사람은 책 얘기를 하려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변명해본다. 끝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의 인용을 남긴다. 


'주변의 잡동사니를 치우면 마음의 잡동사니도 치울 수 있다.'

 

 

*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은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의사소통이 쉽다는 점은 축복이자 저주다.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 하루를 전부 써버리는 것과 그냥 문을 닫아걸고 소통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 - P180

비난하는 태도는 분노와 방어로 이어질 뿐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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