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
마틴 불 글.사진, 이승호 옮김 / 리스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그래피티라는 것을 접한 것은 수능이 막 끝난 때였던 것 같다. 압구정 굴다리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는 넋이 나갔더랬다. 처음 그런 그림들을 봐서 더 그랬겠지만 누기길래 저렇게 멋진 그림을 벽에다 그렸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으레 화가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기에... 나로서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시트란 사람들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화가란 원래 자기만의 방에서 비밀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누군가 표절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을 것 같고 화가란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환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얼마 후 나는 스프레이를 들고 그림그리는 젊은이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 저 사람들이 바로 그 그래피스트구나, 하고 비로소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피스트들은 물론 제안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겠지만 주로 벽을 사서 그린다고 들었다. 아무 벽에나 마음대로 그림을 그렸다가는 잡혀가기 십상이므로 벽을 돈을 주고 구입해서 그리는 것이다.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 길을 지나가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래피티. 그래피티란 미술관에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는 그림이 아니라는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고 낮은 곳에 위치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그 길을 지나던 취객이, 청소년들이 그림과 맞딱뜨리는 순간 그 그림은 의미를 갖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나에게, 혹스턴 모텔 청소부 출신이라는 유명한 아트 뱅크시의 그림들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그림은 그의 붓에서 떠난 후에 또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세월의 흔적에 의해 사라지기도 하고 붓이 덧칠되어서 또다른 의미를 덧입기도 하는 그래피티. 단순히 낙서라고 치부하기에 그래피티가 갖는 의미는 크다.
브래드피트,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한 헐리우드 스타들도 좋아하는 화가인 아트 뱅크시, 그는 재미있게도 쥐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그림이 경매에 부쳐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그림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벽을 구입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려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지워지기도 하는 그래피티. 그 모든 것이 그래피티의 저항적이고 탈시공간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동안 관심이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쳐오던 그래피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아트뱅크시처럼 세계적인 그래피티스트, 거리 예술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