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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지음, 배명자 옮김, 김창휘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돈을 벌기 위해 필요없는 검사를 해대는 종합병원의 의사, 환자에게 해가 됨을 알면서도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의사, 부유층에게 돈을 받고 거짓 진단서를 떼어주는 의사,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겨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성형외과 의사.... 우리는 어느새 이런 의사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래서인지 불가능한 병의 치료에 혼신을 다하는 <닥터스>에 등장하는 의사들을 보며 새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를 거듭하고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일하는 의사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그야말로 현실의 우리들에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분명히 논픽션인데 마치 픽션 같달까. 우리 사회의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어느새 내게도 익숙해졌는가 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유난히 기억에 남는 환자 들이 있다. 자살을 기도해 기도가 녹아버린 인도 청년, 숨. 그는 서른살정도 연상의 아내와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다. 주변에선 위장결혼이라는 의심을 받는 그는 아내의 정성어린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런 것이 절망감을 이기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적적으로 인공장기를 이식받아 회생되지만 그는 다시 자살하고야 만다. 의사들의 열정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목숨을 버려야 했던 숨. 책을 덮고 나서도 숨의 절망감 때문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 신의도 고치지 못한 숨의 절망. 결국 마음의 병이 몸의 병보다 고치기 힘든 것 아닐까.
마음의 병이 무섭다는 것은 안면장애를 가진 ‘귈’의 사례를 통해 더 실감하게 된다. 귈의 엄마는 귈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았고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균에 감염되어 얼굴이 괴사하는 이상한 병에 걸린다. 귈의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어찌나 이기적인지. 가엾은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모자라 많은 어른들에게 괄시받고 그래서 그런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의사인 라이트너는 오래도록 건강한 궐이 왜 그렇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균에 감염되었을까 의문을 가진다. 평생 얼굴을 갖기 위해 힘든 진료를 감당해야 했던 귈.
물론 이 책에는 환자들만큼이나 곤경에 빠진 의사들이 등장한다. 혼신을 다해 연구하고 치료했음에도 손해배상 청구를 받고, 불치병이나 다름없는 환자를 완치시켰음에도 의료법에 어긋나 곤란해진 의사들. 의사들이 마음놓고 의술을 펼치기에는 현실이 그에 따라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나친 윤리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새삼 생각해보았다.
의술도 예술이라고 한다. 의사와 환자가 신뢰하고 마음이 통하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은 책. 감기와 배탈과 같은 작은 병에도 신음하는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땅의 모든 의사들과 환자들의 고통과 노력을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