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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
홍동우 지음 / 지우 / 2023년 10월
평점 :
간만에 교회에 대하여 정의해볼 수 있는 귀한 도서가 등장했다. "교회 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라는 책이다. 요즘 한창 교회의 불의한 모습, 정의롭지 못한 모습으로 인해 "교회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빠져 있던 찰나, 이 책을 접하고 읽게 되면서 머리속에 혼란스러운 교회의 정의, 교회의 존재목적에 대하여 해답을 얻을 수 있어서 요근래 읽은 책 중에서도 특별히 이 책은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홍동우 목사님께서 쓰셨다. 부산장신대를 졸업하고 동대학 신대원을 졸업하신 통합측 교단의 목사님이시다. 어떤 부분에서는 신학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나는 신학에 부분보다는 교회에 대한 경험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찾으려고 애를 쓰신 목사님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다. 저자는 "교회가 참 좋았다. 한 때는 말이다."는 말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나에게 이 때는 언제였던가? 생각을 해보았다.
교회가 너무 좋아서, 교회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해서 목사가 되었지만, 목사가 된 이후 교회가 좋았던 적은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까 목사가 된 이후에는 교회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저자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비슷해서일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공감이 되었다. 각각의 챕터에는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상의 등장인물로 부터 교회의 교회답지 못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후 저자는 그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문제를 풀어나갈 때는 저자의 생각보다는 '성경'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연구하여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기에 글의 권위를 더해준다(개인적으로 성경이 인용이 되면, 그 글의 권위는 끝난 거라고 본다. 토를 달 수 없기 때문에...).
가상의 인물들의 사례는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사실 이 부분이 안타까웠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이 자기교회의 상황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이다. 필자가 가장 좋게 보았던 부분은 책에 소개된 문제들에 대하여 저자가 취하는 방법은 먼저 성경을 통해 비추어 보는 것이고 이후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답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 좋았다(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각각의 챕터에서 제시한 문제들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목회자들의 글을 인용하여서 자신의 글을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첫번째 챕터에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욥'을 등장시킨다. 창조질서가 파괴된 것 같이 느꼈던 욥이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문제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아쉬운 것도 있었다. 먼저 번역의 일관성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깜짝 놀랐던 부분은 저자가 '상황화(Contextualization)'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선교신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 단어는 선교학에서 사용하는 단어였기 떄문에 너무 이해가 잘 되었다. 하지만, 어떤 곳은 '상황화'라고 써놓고 어떤 곳을 '재구성'이라고 써놓아서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뿐만 아니다. '상황(Context)'도 어떤 곳은 '세계'로 써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상황, 상황화'가 더욱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추측은 선교학을 공부하시지 않은 분들에게는 '상황, 상황화'라는 단어가 익숙치 않으니까, 더욱더 알기 쉬운 단어를 사용한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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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겪는 문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교회안의 일상일 뿐이다(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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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챕터에서는 문제를 풀어가는데 '바울서신서'를 등장시킨다. 특별히 교회의 주도권에 대한 문제를 '이신칭의'로 접근했다는 것은 너무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교회에서 이신칭의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였고 그렇게 성도가 된 강자와 약자는 자신을 내어주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교회답게 회복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읽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아쉬움은 존재하였다. 먼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에큐미니컬 노선에 있는 학자를 들고 왔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소외, 차별, 억합을 해소하는 교회론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번째 챕터는 강자와 약자, 소외, 차별의 키워드가 프레임 씌워지는 듯 하였다. 필자가 속한 합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기 않기 때문에 신학적인 불일치가 존재하였다. 다음으로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려 한 점이다. 물론 전후 맥락에 따라서 생각해볼 수 있고 유추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상상을 바탕으로 유추한 것을 마치 결론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세번째 챕터는 너무 공감하여 읽은 부분이기에 다른 코멘트가 필요없을 듯 하다.
몇가지 신학적인 부분과 성경해석적 부분에 약간의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저자의 생각은 전적으로 공감되었고 동의가 되었다. 특별히 필자가 고민하고 있었던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찾게 되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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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교회 안에서 만큼은 서로에게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영적경험과 혈통도, 지식과 그 어떤 것도 요구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자격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이방인과 유대인이, 영적체험을 많이 한 사람과 아직 그러지 못한 사람이 서로 공존할 수 있습니다(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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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서로에게 자격을 요구하지 않음으로, 성육신의 방법으로, 십자가의 방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남성과 여성 및 종과 자유인이 상호 차별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일군 하나 된 공동체를 꿈꾸(P.143)었다." 이것이 우리의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계층이 공존할 수 있는 교회, 주도권을 잡은 자들이 양보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약자들을 보호하고 자신을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 교회, 양보와 배려과 희생이 있는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교회의 교회다움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은 필자와 같이 교회의 교회다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강력추천한다. 반드시 고민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 필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멘트가 있다. "이제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교회를 함께 세워가겠습니다(P.254)." 때로는 교회를 비판할 수 있고, 교회를 향하여 분노를 낼때도 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서는 비방에 그칠뿐이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교회안에서 분노하라! 교회 안에서 교회를 비판하라! 그러나 대책없이 말고, 대안을 가지고 비판하자! 교회의 교회다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회복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