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을 '연애소설'이라 규정하기는 참 애매하다.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경만경>과 <악인>이 연애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이야기이어서 연애소설 작가로 유명해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다른 작품들의 경우는 딱히 연애소설이라 할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악인의 경우도 연애소설이라기 보다는 사람간의 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요시다 슈이치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도쿄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남녀들이다. 항상 수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지만 외로울 때, 힘들 때 주변을 둘러보면 그 사람들은 그저 '풍경'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수많은 인파의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고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무얼 위해 사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것인지,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는 잊혀지고 큰 흐름에 희석되고 만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이런 흐름을 과장되지 않게 담담히 보여주면서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한번쯤 돌이켜 보게 하는 힘이있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큰 감동과, 큰 재미는 없지만 잔잔하게, 담담하게 말을 걸어온다. 우리 인생이 그런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