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잘 지내나? 몸은 건강하재?"
오랜만에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전화기의 종료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크나큰 혜택 앞에서도 자주 안부인사를 못 드렸다는 자책감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예전엔 편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음에 분명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전송 버튼 하나로 지구반대편의 메일함까지도 바로 배달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통신과 더불어 우편물이 하루만에도 배달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편지를 주고 받음에 있어서는 보통 가는데 2~3일, 돌아오는데 또 2~3일, 결국 일주일정도는 걸린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엔 편지를 한 번 주고 받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렸을까...?
먼 거리라면 한 달 넘게도 걸렸을 것이다.
편지를 보내놓고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을 것이고
사랑의 편지라면 설레임이, 가족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 편지라면 걱정도 함께 했을 것이다.
답장이 오기까지 그 시간동안 말이다.
이 책 <아버지의 편지> 는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과 학자들의 부정이 담긴 편지글을 읽어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편지를 쓰고,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가졌던 그들의 마음까지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시대의 흐름에도 변함없음을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비록 듣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잔소리란 관심없는 사람에겐 하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품안의 자식이라고 부모 눈앞의 자식들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이기에 잔소리는 자식사랑의 표현이다.
책에서 소개한 아버지들인 이황, 유성룡, 박세당, 김정희 등은
당대 유명한 학식과 덕을 갖춘 분들답게 편지글 마저도 글이 향기롭다.
이들은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수신제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싶은 마음을 편지에 많이 담았다.
더불어 독서를 수신제가의 기본임을 강조하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아들에게 맞는지,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은 어떤 것이 좋을지 일러주는 자상함마저 보여준다.
이러한 자상함과 더불어 잘못에 대해서는 고치지 않으면 마치 부자간의 인연을 끊어버릴 것 같은 근엄함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단호한 근엄함은 책속 백광훈의 편지에서 제대로 보여준다.
“놀라고 비통하여 죽고만 싶구나. (중략) 너희가 능희 이 버릇을 통절하게 없애지 않아,
혹시라도 이러쿵저러쿵 하는 자가 있게 되면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를 보지 않겠다.
천 번 만 번 경계하고 삼갈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p.49~50)
또 박지원의 편지 중 아들의 득남소식을 듣고 전하는 부분에서 선비의 체통을 살짝 버려두고 천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응애응애 하는 소리가 종이 위에 가득하다. 인간의 즐거운 일이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게다.
육순의 늙은이가 이제부터 엿을 물고 구슬을 희롱할 뿐 달리 무엇을 구하겠느냐?” (p.203)
대개 딸보다는 아들에게 향하는 아버지의 사랑표현이 유별나다.
그것은 아마도 가부장적 유교사상에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딸로서 들어도, 10명의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값진 사랑의 메시지들은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깊은 채찍질로 나를 다독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오늘 밤 휴대폰을 통해서 살며시 전해 온 아버지의 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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