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문학상 수상작품집 : 2009-2018
신수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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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날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고공농성을 펼치는 그녀 제목보고 혹시 농성하는 사람이 뛰어내리는 건가 했는데 자신을 보고 비웃는 형사에게 묽은 대변이 든 오리모양 변기를 던지는 거였다. 그걸 오리 날다라고 표현하다니!!! 혹시나 그녀가 수치심 때문에 뛰어내리면 어떡하나 했는데 '여자가 이런 데서 있으면 불편하잖아.','어차피 뛰어내릴 것도 아니면서'라며 조롱하는 형사에게 오물을 팍~! 결국 그녀는 날지 못하고 강제로 끌려내려가겠지만 그녀의 농성에 함께 한 오리 변기라도 날았다!

<벌레> 공무원 삼수생. 올해도 글러 먹은 것 같다. 어느 날 눈에 띈 벌레. 1평 남짓 고시원에서 숨을 곳은 없었다. 아무리 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벌레. 결국 방까지 옮겼으나 또 나타난 벌레. 방으로 돌아왔다. 북북, 침대 옆과 맞은편의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 양 벽에 붉은 꽃이 가득해지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붉어진 하늘에서 감빛 햇살이 달려들어왔다.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방 안을 그득히 채웠다. 나는 그 속에 들어앉은 작은 벌레였다. 웅크린 몸을 쭉 편다. 두 팔을 벌리고, 붉은 꽃 속에 기대어 누웠다.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몇 해 만의 낮잠이었다.(67p) 포기할 수도 붙지도 않는 시험에 계속 도전하는 자신의 모습이 죽여도 죽여도 없어지지 않는 벌레와 겹쳐 보이는 걸까 아니면 벌레 때문에 미칠 것 같으면서도 1평 남짓 고시원을 떠날 수 없어 방에 눌어붙은 자신의 모습이 방 안의 벌레 같다고 생각한 걸까 삼 남매 중 혼자만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찾다 돌아 돌아 결국 공시생이 된 그녀.. 이번 시험을 망치더라도 생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도전했으면 좋겠다.

<전광판 인간> 뇌 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은정을 돌보는 사회복지사 보라

인간 취급도 안 하다 어느 날 은정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갑자기 돌아가던 눈동자가 멈춘다는 것도. 은정은 사지가 멀쩡한 보라가 부럽고 보라는 은정이 밉다. 은정은 고장 난 인간이니 이런 취급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멀쩡한 인간인데 아버지에게 학대 당하고 갈취당하는 이 삶이 너무 화가 난다. 내리막길 위에서 은정의 휠체어를 밀어버리고 다친 은정을 보며 보라는 고백한다. "널 죽이고 싶었어! 네가 싫어! 널 보면 나를 보는 거 같아. 넌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 지경으로 살고 있는 거야!" 은정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화가 났던 거다. 안타까움과 분노? 정확히 어떤 감정일까.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을 폈고 나는 거기다 이렇게 썼다. 살아. 그녀는 내가 쓴 글자를 인식하더니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동글동글한 눈물이 맺혔다.(136p)

뇌 병변 1급 장애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고 평생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는 은정. 자신의 삶이 너무 비참하고 한스러워서 온갖 분노를 품고 있는 보라가 은정에 의해 위로받았다. 전광판 인간처럼 은정은 보라의 속 마음이 보였던 걸까?

<치킨런> 병든 노파(어머니)를 육 남매 중 아무도 모실 생각이 없다. 형편이 그나마 낫다는 이유로 막내 성근이 모시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지고 반지하에서 치킨 배달을 하며 노파를 모신다. 그는 20분 안에 배달을 목표로 목숨을 걸고 도로 위를 달리며 돈을 벌고 있다. 아이들은 유학 중... 그런 아이들이 할머니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라고 한다. (배은망덕한 것들 ㅠ) 결국 제 손으로 어머니를 보낸다. 유난히 막내라고 예뻐했던 어머니를, 어머니는 자신의 똥기저귀도 갈아주고 밥도 먹여주고 안아주고 업어주었지만 자신은 그녀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말이 유난히 없던 어머니는 제 자식이 자길 보내려는 걸 아는지 마지막 죽음으로 모는 상황에 아들에게 웃어 보인다. 보험사가 말하길, 폐암이 오래되어서 많이 고통스러웠을 텐데 몰랐느냐고. 어미를 보냈으니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지막 배달 길 길에 보이는 백발 노파의 모습이 어미와 겹쳐 보이고 그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왜! 이제 와서! 제 손으로 어미를 죽일 때는 언제고! 나도 자식이고, 어미가 된 입장에서 정말 이 소설은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병든 노모를 모시는 일이 쉽진 않겠지.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며 안 보내놓고 일을 하는 동안 집을 비우게 되니 욕창이 생기고 오랫동안 굶고 기저귀도 못 갈고 누워 있는 어미는 요양원보다 편하게 계셨을까? 그리고 어쩜 육 남매를 키웠는데 아무도 어머니를... 모시려고 안 하다니...... ㅠ 계속해서 머릿속에 잔상이 남으며 괴롭히는 소설이었다.ㅠ

<파지> 하루아침에 외부 하청 소속으로 바뀌어 비정규직이 되게 된 예서는 파업을 감행한다. 사내연애 중인 진철 또한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예서는 부서를 옮기게 되었으나 투명인간 취급. 한 달이 넘게 자신의 책상은 생기지 않았고 온갖 잡일을 맡아 했지만 자신을 벌레보다도 못한 취급에 결국 다시 파업 행렬에 참여한다. 그러나 한 번 배신자 낙인은 없어지질 않았고 진철과도 헤어지고 결국 유동인구도 없는 구석에서 혼자 피켓시위를 한다.. 진철이 못 챙겨간 옷을 가지러 예서 집을 갔을 때 삭발한 예서를 본다. 예서는 말한다. 삭발하면 다시 끼워준다 그래서 너무 외로워서 삭발했다고. 마지막에 서로 안고 우는 모습을 보니... 아 예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살아줘서 고마워..

자를 수 없으니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다. 인간이 무너지는 포인트를 안다. 그 포인트를 잡고 조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저 회사의 부속품 중 하나일 뿐 그 부속품이 거슬리게 한다면 버리면 된다. 하지만 부속품은 버텨야 한다. 당장 돈 나갈 곳이 줄줄이기에. 그렇게 자존감도 버리고 버텼다. 외로움..외로움 때문에 삭발했다. 그녀는 사귄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동료들에게도 배신자로 찍히고 벌레만도 못한 취급...없는 사람 취급... 노동자를 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회사를 보며 화가 난다.

<비니> 제주도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사건 모티브를 딴 소설이다. 딱 읽자마자 그 사건이 생각났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이 소설 읽고 생각나서 인터넷 뉴스 찾아봤는데 책임자는 집유를 선고받았다. 그렇다 결국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다. 19살, 아직 꽃도 못 피운 어린 생명이 그렇게 졌다. 이민호군의 죽음을 계기로 2018년부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폐지되었다고 한다. 적성에 맞는 곳에 현장실습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의 100% 취업 문구를 위해 부당해도 참고 일한다. 19살 때부터. 말이 되나.

이 소설에 나온 현장실습생 이름은 경호다. 경호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경호의 담임에게 부탁하여 '고등학교만 졸업하게 해주십시오'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게 되었다. 혼자서 기계를 보았다. 관리자는 없었다. 그 넓고 찌는 곳에서 혼자서 기계를 손 보다 사고를 당했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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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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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하이힐이 아니라 운동화다. 힘이고, 동사이고, 근육이라서 행복한 사람만이 뛰어오르고, 춤을 추고, 먼 길을 간다. 즐거움의 감촉이 달라진다. 충만하고, 의미 있고, '나다움'에 벅찬 기분, 그러면서도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 이 하얀 곰처럼 폭신한 마음이 너를 업고 어디든 가줄 것이다._20p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 마라.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그 방향을 바라보며 노력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도 마라. 그 대신 나의 도마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는지를 알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주어라. 그리고 그것들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요리를 떠올릴 수 있는 창조력을 심어주어라. 낙천과 배짱을 가진 삶의 요리사로 키워라._37p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가면 세상 어디든 행복할 거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신발과 같아. 먼저 신발을 신어야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니?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신은 사람은 가시덤불이 나와도, 얼어붙은 강을 만나도 웃으며 성큼성큼 건널 수 있다. 불행한 채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맨발로 길을 떠나는 것과 같아. 그곳에 가면 신겠다고 신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맨발로 얼마나 버티겠니? 조그만 자갈돌 하나만 밟아도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단다."_44p

"행복의 힘으로 그곳에 가렴. 행복의 등에 업혀서가 아니면 우리는 진정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없어. 행복을 향해 달리지 마라. 행복을 신고 달려라. 좀 더 가치가 있는 것을 향해 달려. 고통도, 지겨움도 견딜 가치가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단다. 그곳에 가서 행복하겠다고 불행을 연장시키지 마라. 그건 사람들이 평생 저지르는 실수다. 행복을 기다리며 삶을 낭비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마라."_50p

여행은, 당신을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외로운 이는 결혼을 미뤄라. 더 외로워질 테니. 불안한 이는 여행을 미뤄라. 거기선 더 불안해질 테니. 스스로가 싫은 이도 여행을 미뤄라. 여행지에선 '나 자신'밖에 상대할 이가 없으니. 행복한 여행이란 행복한 곳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떠난 여행이다. _53p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오. 행복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오. 행복은 누리는 것이오. 숨처럼 쉬는 것이오. 느끼고 기억하시오. 그저 '이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_86p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느낌입니다. 다이빙을 하세요."_98p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_106p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그 즐거움에 당도하기까지의 여정도 필요한 까다로운 존재들이다. 그것이 인간 행복의 내러티브다. 그래서 인간만이 고생스러워도 행복할 수가 있다. 때론 고생스러울수록 더 행복해진다._161p

미래가 없는 이는 당장 '원하는'일을 해야 하고, 미래를 가진 이는 당장 '중요한'일을 해야 한다._168p

꿈을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를 주지는 않는다. 목표를 향해 '나의 조각들'을 가지런히 정렬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_178p

그러니까 "다 괜찮을거야"라고 말하지 마라.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불편함을 느끼고 꾸준히 그 꿈안에서 한 방향으로 나의 조각들을 모으다보면 발버둥이 수영이 되는 순간이 온다. 몸부림이 춤이 되는 순간이 온다._179p


가벼운 에세이일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연금술사같이 주옥같은 책이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릴 문장이 없었다. 겨우겨우 추려 몇 문장만 옮겨 적어보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행복이라는 게 뭘까 우리는 흔히 원하는 걸 가지고 원하는 곳에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일들을 억지로 한다. 그렇게 힘들어야 가질 수 있는 게 행복이라면 우리는 늘 불행하게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늘 공개된 공간과 소음 속에서 살고 있다. 집에 혼자 있더라도 끊임없이 스마트폰 SNS를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회복과 성장은 오조리 평화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곧 돈이라며 분 단위도 모자라 초 단위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럼 그렇게 살았다면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고 돈이 없다고 불평하며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보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다그친다. 우리가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더 많이 벌려고 아우성 칠 때 여유롭게 마음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나쁜 것인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면서 행복을 향해 가는 길은 불행하기만 하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한다.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 다이빙을 추천한다. (물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데 진짜 다이빙을 도전해보아야 하나?)

행복해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는데 우리는 사실 행복한데 자각하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닐까? 아니면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주문을 걸고 있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고 남편과 대화를 나눠보니 우리는 행복하다고 한다. 인간은 위선적이라 남의 고통을 볼 때 안도하며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그대로인데 왜 남의 고통과 비교를 해야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을까.

확실하고 내세울 만한 행복을 느끼려면 번거롭다. 갖고 싶은 걸 언제나 가지고 있어도 언제나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행복도를 느끼는 행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 따위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데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욜로가 한창 인기였다. 한 번 사는 인생. 뭐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아무리 벌어서 저금해봤자 집 한채 살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인생 뭐 있나 그냥 다 쓰고 죽자(?)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당장 죽을 확률은 낮다. 당장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책임감이 없다. 우리는 미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아이들은 꿈이 자꾸 바뀐다. 그렇게 무한한 꿈을 꾸는 아이들을 우리가 꿈이 없는 어른으로 키워낸다.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란 질문을 "지금 기분이 어떠니?","너는 뭘 해야 행복할 것 같니?"로 바꾸어야 한다. 꿈에 대해 고민해보았는데 나 역시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나의 출신 나라, 즉 한국의 경상북도가 아니라 편안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의 고향인 땅을 찾고 나의 꿈을 함께 꿀 부족을 찾으라고 한다. '부족'이란 어감이 참 좋다. 마흔다섯의 화자 보고 아주 어리다, 젊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32살이니까 더 어리다! 내 안의 꿈이 있다면 먼저 감정적 체력을 기르라고 했다. 감정의 체력은 끈기와 배짱. 끈기와 배짱을 기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자. 그 발버둥이 화려한 춤이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하니까.

N포 시대 행복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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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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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다. 4·3은. 이제 현대사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인식되지만, 우리에게 평화와 인권, 희망을 읽게 하는 기호가 돼야 한다.

우리들이 '순이 삼촌'

해서, 요동치는 이 급류의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주의 사라지는 끝자락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부여잡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저 해안선의 끝자락처럼. 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집을 부여잡고 있는 아흔의 할머니처럼. 또한 제주는 묻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섬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며 ㄴ대체 제주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럼 우리의 후대는 뭘 하지?

지금 해안선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주 4·3 은 1947년 3월 1일이 도화선이 돼 일어난 이 비극은 1954년 7년 7개월 동안 섬의 공동체를 절멸시켰다. 제주도에 여행 갈 때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디뎠던 제주국제공항은 집단학살의 현장이라고 한다. 그러한 아픔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땅을 아무렇지 않게 디뎠다니... 무지가 타인에게 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느꼈다. 유해발굴 작업은 계속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오래된 사건이라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발굴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족의 행방을 모른 채 살고 있고 뼈 가루라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구술로 이렇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역사가 된다.(49p)

고사리를 꺾어 집에 가는 날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며 집에서 엉엉 울고 다음 날 또 고사리를 꺾으러 나갔다. 그날은 아버지가 마중 나왔다. 그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순경은 아버지를 쏘았다. 그 뒤로 고사리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당시 열네 살이었던 노형동의 할머니. 왜 무슨 이유로 선량한 시민들을 그렇게 죽였을까.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는가. 이 사건의 더 심각한 점은 '연좌제'였다. 가족을 잃은 것도 가슴이 사무치는데 어디 가서 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 자식들까지도 취업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시국 탓'이라며 그냥 살았다.

4·3 사건 유가족들이 5·18 사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5·18 사건 유가족들이 416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한다. 국가 폭력에 희생되어 진상 규명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한이 맺힌 채 눈도 못 감고 죽어갔을 사람들.

그저 시간만 끌었던 정치인들 사람은 죽어도 기록은 남는다. 4월이 되어 5·18 416 4·3 사건들을 마주하니 나 또한 가해자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무관심도 칼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그저 운이 좋지 않다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되기 때문에 진상 규명이 필요하며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적합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보상? 보상을 어떻게 해주나 그 세월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 이루어진 들 그들의 세월을 보상할 순 없을 것이다.

희생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살암시민(살다보면) 살아진다' 당장은 죽을 것 같은 오늘도 살다 보니 살 수 있었다.

제주가 관광도시가 되고 나서 많은 외부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제주의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왜 길은 곧고 넓어야 하는가. 인간의 편의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여 제주도 그저 그런 관광도시 면모로 변해가고 있다. 특별한 매력이 없는 도시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제주 전체를 다루고 있다. 제주해녀문화유네스코 등재 소식과 제주 최초의 여교사였고 최초의 유학생인 잊힌 신여성 강평국에 대한 이야기와 변해버린 제주의 모습까지.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사건들을 사건 자체로만 보면 강 건너 불구경 이야기 같다. 그러나 사람이 있었다. 사건 중심에는 사람이. 그 사람들 하나하나 이야기를 파고들면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저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것뿐. 아이였던 사람들이 이젠 노인이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진정성 있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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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베스티어리
혜로 지음 / 휴앤스토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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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창은 자신의 논문 주제를 위해 동물원에 사는 암호랑이 비터를 탄자니아의 야생에 풀기로 한다. 수사자와의 교미에서 태어나는 라이거가 야생에 잘 적응하는지 호랑이와 사자가 합쳐졌으니 야생을 지배할 알파가 될 것인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외동아들로 부족함 없이 자라고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희창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실추된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동물원에서만 자랐던 비터는 쾌적한 환경, 가만히 있어도 주어지는 양질의 식사로 만족하면서도 지루함 때문에 야생에서의 삶을 상상해본다. 비터는 탄자니아의 야생 동물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 도착해서 비터는 처음에 다정하고 잘생긴 아판데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결국 자기와 아이들을 잘 지킬 수 있는 알파 세이드를 선택한다. 암사자들과 사냥에 나서는 것도 힘이 들고 8번째 아내인 막내로 살아가는 것도 힘이 든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책임과 고통을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희창 역시 자신의 이기심으로 비터를 야생에 몰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한 수사자 알파만이 일처다부제를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고 인간 세계에서도 힘 있고 돈 많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사는 세계는 비슷하다. 아무리 배고픈 순간에도 인간은 위험한 존재니 절대 공격하지 말라는 사자 무리들을 보면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성인인 척 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인간이 많은 동물들을 마음대로 학대하며 좌지우지하며 살기 때문에 동물의 눈에는 자신들의 종족을 위협하는 한 생물에 불과할 뿐이다.

비터가 반한 수사자 아판데는 자신만 사랑하는 다른 수사자들과 다른 줄 알았지만 그도 역시 강한 알파가 되어 여러 이성을 거느리고 종족 번식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조카들을 죽이고 형과 싸웠지만 결국 패 한 알파는 멀리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매우 똑똑한 비터는 수사자만이 알파가 되고 암사자들만 사냥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암컷이지만 알파가 되기 위해 세이드와 싸운다. 세이드는 자신의 힘이 다 하지 않았음에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중단하였고 그 모습에서 한 가정을 지키는 가장의 모습을 보았다. 한 무리의 알파가 되기 위해서 강한 힘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희창은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비터의 아기들을 구해줬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동물을 자신보다 아래 생물로 보는가. 희창이 비터의 아이들을 구해주고 비터가 희창의 목숨을 구해주는 모습처럼 서로 도와가며 살아갈 순 없는 걸까?

아름이 졸라서 탄자니아까지 가긴 했지만 여자라고 빨래만 시키고 구박 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작가가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나 읽는 동안 불편했으나 작가의 의도였다. 남자들 사이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독해져야 한다는 그릇된 욕망이 넘쳐 결국 자멸하고 마는 선주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여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치타 하라카는 아이들에게 사냥하는 것을 정성껏 가르쳐주고 성인이 된 아이들을 미련 없이 보낸다. 인간보다 더 성숙한 모습이다. 하라카는 사자에게 아이들을 잃어서 슬프지만 잊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자식들을 정성스럽게 키워 독립시켰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하면서 독립을 못 하게 막는 건 아닐까? 아이가 성인이 되고 심지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품 안에 놓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과연 자식들을 위한 길일까. 세상이 험해 그렇다고 하지만 동물의 세계는 더 험하다. 더 강한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렇게 한다.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는데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나 스스로 뮤지컬을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읽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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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영성 - 내 마음의 주인 찾기
폴 트립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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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면서 사는데도 늘 돈이 모자라 '얼마가 있다면'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성경에도 돈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지 몰랐는데 꽤 많은 양으로 다루고 있었다. 역시 돈은 예전에도 지금에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가 보다.

돈 문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태도에서 생긴다. 합리적인 경제생활의 첫걸음은 우리보다 높은 하나님의 영광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돈도 우리가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정 문제에 빠져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자책하지 않기 위해 남 탓을 하고 희망을 버리거나 냉소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이 보살펴 준다는 것을 안다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마음에서 돈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는 네 가지라고 한다. 첫째 '은혜를 모르는 마음'이다. 우리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바라게 된다. 둘째 '필요'다.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자꾸 물건을 사들인다. 세 번째는 '불만족'이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 마음속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요소는 '질투심'이다. 우리는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질투를 느끼고 물건을 사게 된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잊고, 필요와 불만족과 질투심 때문에 돈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며, 너무 나만을 위해 돈을 쓰고, 그렇게 낭비를 일삼는다. 그렇게 하다가는 돈이 얼마나 있든지 평생 "돈, 돈, 돈"하면서 살 것이다. 돈이 너무 없거나 너무 많아서 재정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재정 문제는 항상 마음의 문제다. 월급의 액수와 예산 항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재정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생각과 욕망 때문에 생긴다.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재정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 둔다면 하나님이 내 필요를 은혜로 채워주시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돈을 구걸하기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건 곧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는 뜻이기에 돈은 제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내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 하나님이 내 필요를 은혜롭게 채워 주시길, 하나님이 나를 향해 정하신 뜻을 이루시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중심에 있고 정말 나밖에 모르면 돈이 내 대리인이 되고 내 구원자가 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선 우리는 교회에 헌금을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면 그 돈은 구원에 쓰인다고 한다. 영원한 나라가 존재하는데 현실에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쓸 것인가? 현재를 우리가 머물 낙원으로 만드는 데 자원을 써선 안 된다고 한다. 영원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한 건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니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쓰라는 말은 베풀며 살라는 말이었다. 베푸는 행위는 하나님의 너그러운 일에 동참하는 행위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보살펴 주시니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아낌없는 베풂이란 그런 것이다. 받는 이가 선해서가 아니라 주는 이의 마음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멋진 약속을 하신 것은, 그분이 놀랍도록 너그러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상을 숭배하는 변덕스러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의 복을 한없이 베푸는 것이었다. 사람은 그 축복과 약속을 하나라도 받아 낼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과 약속은 아낌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후한 성품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이성을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감성을 주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전하라고 돈을 주신다. 우리가 돈을 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하나님이 제공하신 거라고 한다. 우리는 남은 돈을 베푸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먼저 베풀며 살아야 한다. 돈 때문에 괴롭다면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자.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본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방향이 잡힐 것이다. 평균 직장인의 월급보다 훨씬 많이 벌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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