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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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다. 4·3은. 이제 현대사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인식되지만, 우리에게 평화와 인권, 희망을 읽게 하는 기호가 돼야 한다.

우리들이 '순이 삼촌'

해서, 요동치는 이 급류의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주의 사라지는 끝자락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부여잡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저 해안선의 끝자락처럼. 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집을 부여잡고 있는 아흔의 할머니처럼. 또한 제주는 묻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섬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며 ㄴ대체 제주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럼 우리의 후대는 뭘 하지?

지금 해안선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주 4·3 은 1947년 3월 1일이 도화선이 돼 일어난 이 비극은 1954년 7년 7개월 동안 섬의 공동체를 절멸시켰다. 제주도에 여행 갈 때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디뎠던 제주국제공항은 집단학살의 현장이라고 한다. 그러한 아픔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땅을 아무렇지 않게 디뎠다니... 무지가 타인에게 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느꼈다. 유해발굴 작업은 계속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오래된 사건이라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발굴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족의 행방을 모른 채 살고 있고 뼈 가루라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구술로 이렇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역사가 된다.(49p)

고사리를 꺾어 집에 가는 날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며 집에서 엉엉 울고 다음 날 또 고사리를 꺾으러 나갔다. 그날은 아버지가 마중 나왔다. 그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순경은 아버지를 쏘았다. 그 뒤로 고사리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당시 열네 살이었던 노형동의 할머니. 왜 무슨 이유로 선량한 시민들을 그렇게 죽였을까.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는가. 이 사건의 더 심각한 점은 '연좌제'였다. 가족을 잃은 것도 가슴이 사무치는데 어디 가서 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 자식들까지도 취업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시국 탓'이라며 그냥 살았다.

4·3 사건 유가족들이 5·18 사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5·18 사건 유가족들이 416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한다. 국가 폭력에 희생되어 진상 규명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한이 맺힌 채 눈도 못 감고 죽어갔을 사람들.

그저 시간만 끌었던 정치인들 사람은 죽어도 기록은 남는다. 4월이 되어 5·18 416 4·3 사건들을 마주하니 나 또한 가해자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무관심도 칼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그저 운이 좋지 않다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되기 때문에 진상 규명이 필요하며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적합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보상? 보상을 어떻게 해주나 그 세월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 이루어진 들 그들의 세월을 보상할 순 없을 것이다.

희생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살암시민(살다보면) 살아진다' 당장은 죽을 것 같은 오늘도 살다 보니 살 수 있었다.

제주가 관광도시가 되고 나서 많은 외부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제주의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왜 길은 곧고 넓어야 하는가. 인간의 편의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여 제주도 그저 그런 관광도시 면모로 변해가고 있다. 특별한 매력이 없는 도시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제주 전체를 다루고 있다. 제주해녀문화유네스코 등재 소식과 제주 최초의 여교사였고 최초의 유학생인 잊힌 신여성 강평국에 대한 이야기와 변해버린 제주의 모습까지.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사건들을 사건 자체로만 보면 강 건너 불구경 이야기 같다. 그러나 사람이 있었다. 사건 중심에는 사람이. 그 사람들 하나하나 이야기를 파고들면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저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것뿐. 아이였던 사람들이 이젠 노인이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진정성 있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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