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적 기억 속의 내 모습은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데 어느덧 중년이라는 나이로 인생의 무게를 이고지고 나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서울과는 멀다는 이유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유로, 아이가 고3이라는 갖가지 이유들로 자주 들르지 못하는 나의 고향집에도 매일 한주먹이나 되는 약으로 하루하루 버텨주시는 나이든 아버지가 홀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 어릴적에는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 역시도 그 분의 삶과 그리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듯 하다. 한국문학으로는 최초로 미국에 드라마 판권으로 판매가 되기도 한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엄마를 부탁해>에서 이은 신경숙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역시도 너와 나,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솔직담백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작가님은 작가님의 이름 석자만으로 브랜드네임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작가였다. 그간의 표절논란으로 이번작품의 이른 복귀에 대한 찬반여론이 여전하지만, <아버지에게 갔었어>라는 소설 자체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사의 귀환을 알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족 전체에 대한 통찰력과 관계, 가족들간의 연민과 사랑,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삶의 애환과 고민들이 깊이 녹아져 있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 대한 나와 내 주변인들에 대한 각자의 인생을 다시금 돌이켜 볼 시간을 가져주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엄마가 서울 병원으로 입원을 하고, J시에 홀로 남겨진 아버지가 울었다는 여동생의 말에 얼음장 같은 주인공의 마음이 움직여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아버지에게 가 있겠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하며 지내며 뇌생격으로 다섯번이나 쓰러지셨던 아버지의 사라져가는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물건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버리지도 없애지도 누구에게 준 적도 부서버린 적이 없어도 어느 시간 속에서 놓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고 희미해진다. 그랬지, 그랬는데, 라는 여운을 남겨놓고.

(p.20)

나 역시도 여전히 아둥바둥 앞만 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내 능력에 벗어나거나 힘에 겨워도 버텨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견디곤 했었는데 책 속의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탈진한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기운을 차려 겨우 들려준 말이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p.92)

고향과 고향집을 떠올리면 나에게도 같은 느낌이 들어 공감이 갔다. 어딜가도 어떤 곳을 봐도 항상 생각에 잠기게 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추억하며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예전 돈통 역할을 했던 나무궤짝에서 나온 리비아로 해외파견을 나간 장남 승엽이와의 편지는 아버지를 단순히 아버지가 아닌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으로 느끼고 깨닫게 그려지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둘째 아들도, 어머니 정다래여사님 입장에서도, 전쟁에서의 인연으로 만난 박무릉, 그리고 손주 입장에서 본 할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도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우리 아버지도 이제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연로하셨다. 나 역시도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들로 더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에도 많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용케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는 아버지의 말도 감동이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만으로도 언제나 힘이 되고 든든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아버지도 알고 계셔야 함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짐승이 우리의 기척에 놀라 달아날 때 아버지 뒤로 슬쩍 몸을 숨겼던 그때, 아버지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움이 달아나던 그때가 그립게 떠오른곤 했다. 나는 곁에 있을 뿐 아버지의 두려움을 조금도 막아주지 못했다.

(p.397)

뇌경색에 사라져가는 기억들의 파편을 부여잡고, 육체는 쉬고 싶지만 뇌는 깨어있는 상태로 도망치라고 소리치는 아버지를 껴안고 잠들때까지 섬집 아기를 불러주는 딸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도 저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오래 굽어 살펴온 것들을 둘러보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어름져 있던 빛이 내게까지 번져왔다. 이런 날이 올 줄을 모르고 살았구나.

(p.404)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지만, 아이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아이의 기억 속 나와 아빠는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어떠한 모습으로 추억하고 기억하게 될른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나 역시도 내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재밌게 여기면 금방 탈 수 있다고 했다. 넘어지려고 해도 뒤에서 아버지가 꽉 붙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p.228)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있다. 각자 어떠한 기억으로 아버지를 추억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상기시킬 수 있을 거라는 확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