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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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를 읽으면서 불안한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죽어라 공부를 해 대학을 들어갔지만, 다시금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했고, 다가올 핑크빛 미래보다는 암울한 회색빛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언제나 내 삶을 지배하곤 했다. 치열하고 살았고,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나의 20대처럼,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불안감과 고충이 어떤 작품보다도 잘 녹아들어가 있는 이 책 <소피아는 언제난 검은 옷을 입는다>는 현대 이탈리아의 흐름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파울로 코네티가 쓴 책이다. <여덟 개의 산>이라는 작품으로 '이탈리아 스트레가상', ' 프랑스 메디치상', '영국 PEN상'에다, 시사성 있게 다룬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로스트라니에로상'까지 수상해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을 시사성 있는 메시지를 담아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는 소피아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의 불안하고 아픈 청춘의 이야기를 시간적인 순서에 구애를 받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각 이야기마다 소피아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소피아 개인의 삶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그녀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소피아의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마치 조각작품을 맞추어 나가듯 총10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전체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시시각각 마음이 변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엄마 로사나, 그런 로사나와 엠마 사이에서 단순하고 안락한 삶을 꿈꾸는 지친 모습의 엔지니어 아빠 로베르토에게서 소피아는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언제나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며 결국 16살, 어린 나이에 자살을 시도한다. 그나마 공산주의 라디오에서 자율주의 당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시위대에 참여해 쫓기는 신세로 숨어지내야 하는 고모 마르타는 소피아 인생에서 유일한 보호자이면서 안식처 역할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첫사랑 레오, 어린시절 함께 해적놀이를 하며 함께 지냈던 오스타, 낯선 도시 뉴욕서 알게된 피에크로와 유리, 그녀의 룸메이트였던 카테리나 등은 그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들과의 관계들을 통해 그녀는 우울했던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아나갈 힘을 얻어내게 된다.

이 책의 독특한 형식처럼 각장마다 등장하는 소피아의 연관인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다시금 소피아와 연결고리를 이어가는 것이 굉장히 특이하게 그려졌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다가 성인이 되기도 하고 다시 사춘기 소녀시절이 되기도 한다. 어린 꼬마였을 때조차도 소피아의 삶은 그저 어두운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죽음이 없다면 기도를 할 필요도, 교회에 갈 필요도, 어른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욕이나 거짓말을 참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그 후에 어디에 가게 될지가 문제였다.

(p.32)

"그런데 왜 우리 모두는 죽어야 하는거야?"

"음, 그건 그냥 표현방식이야. 난 늘 그렇게 말해. 죽어. 죽어라. 언제나 죽어. 또는 없어져버려. 죽어버려. 다들 죽어버려라고 말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감정을 조금 분출하는 것 뿐이야."

(p.53)

언제나 불안하고 안정감을 찾기 어려운 소피아에게서 고모 마르타는 행복해지고하는 마음을 갖게 할 만큼 소피아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안식처로 느껴져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그녀의 첫사랑 레오와의 관계 역시도 쉽지 않았음이 안타까웠고, 연극이라는 새로운 삶으로의 도전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녀의 삶을 어느새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즐겁게 웃으며 다시 아홉 살이 되어 정원에서 모초와 함께 놀고, 그러다 열다섯 살로 돌아가 외로움에 눈물지으며 침대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반면에 분노는 스무살에 시작됐다. 분노를 안지 얼마되지 않았고 언젠가 필요할 때를 위해 보관해 두었다. 너는 네 인생의 스승이자 제자이다. 과거의 너에게 배우고 미래의 너에게 가르쳐준다, 보통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길을 잃지만 너는 춤을 추며 다닌다.

{p.187)

소피아는 상처받아 외롭고 마음둘 곳 없이 방황하는 현대의 우리 청춘들을 대변하고 있어 보여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무엇보다 의미있게 다가왔다.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한다. 행복을 갈구하지만 때로는 불행한 자신의 모습이 더 크게 비춰지기도 하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 속에서도 작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찾아나가는 것 역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을 통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올바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의미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우리 안의 또 다른 '소피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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