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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의 세계사
올댓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제목이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침대 위의 세계사>라는 제목을 본 지인은 야릇한 시선을 한 채 내게 장난스런 말을 건네며 지나갔다. 이렇듯 '침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면서 음지의 단어로 인식이 되어 있고, 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책 <침대 위의 세계사>는 세계적인 권력자들의 성과 사랑이 이루어졌던 은밀한 공간으로서의 침대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머리말에서 잠깐 언급된 여지껏 수많은 서적들 가운데 침대와 관련된 제대로 된 역사기록을 거의 찾기 어려운 데다, 우리 인간의 탄생에서 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수천년을 걸쳐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 순수한 침대역사와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책이라서였다.
이 책 <침대 위의 세계사>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오래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된 동굴에서부터 현대적 모습으로서의 침대가 갖춰지기까지의 침대의 역사를 시작으로, 인간의 3분의 1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는 수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발판으로 점차 산업화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결혼과 성에 관련된 침대의 역할, 출산과 죽음에 관련된 침대의 역사와 그 의미의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다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여행을 통해 혹은 빈대와 같은 해충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공유하는 역할로서의 침대, 전쟁이나 정복을 위해 이동을 해야 할 상황에서의 다양한 침대, 정치 무대로서의 침대가 했던 역할들이 소개되고 있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현대적 의미의 침대이야기와 앞으로 변화될 미래의 첨단과학적 침대이야기까지 총망라해 다뤄지고 있다.
나뭇가지나 풀더미, 짐승털가죽으로 시작된 원시시대 침대가 중세후기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침대의 형태가 갖춰졌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잠을 자는 상태가 죽음을 연상시켜 네델란드 화가 람브란트를 포함한 당시 사람들은 반쯤 앉은 상태로 잠을 잤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했다. 또한 베개는 여성적인 것을 치부해 남자들은 잠을 잘 때 머리 통나무를 대고 잤다고 하며, 보온 기능 외에 악마나 마녀를 쫓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캐노피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마녀가 활동하기 좋은 새벽 시간인 'watching hour'에 여자가 돌아다니면 처형을 했다거나 여성을 낮춰보는 시대적 관념탓에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흔했다는 사실, 산후 사망원인이 의사의 손에 의해 옮겨진 박테리아가 원인인 패혈증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잘못된 행실탓이나 산욕열로 인해 사망했다고 본 역사적 사실들은 당시 얼마나 여자들의 지위가 어떠했으며,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던 상황들이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임종침대와 장례의식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들 알버트 죽음을 기리기 위해 40년동안 검은 상복을 입었다는 사실도 그렇고, 죽은 사람에게 화려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몇년간 부패한 시신을 보관했고, 부패하더라도 아픈사람 대하듯 음식이나 커피를 정성껏 차려주었으며, 장례후에도 시신을 3년에 한번씩 꺼내 씻어 다시 묻는 인도네시아 토리자이야기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엘리자베스1세나 루이14세의 화려하고 장엄한 침대부터 인도의 차르포이와 같은 소박하고 간단한 침대 이야기도 읽는 내내 머릿 속으로 상상을 하게 되었다.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각자의 개인 침실이 생긴 것이 19세기 들어서였다는 사실은 제법 놀라운 일이었고, 1인 가구 천만시대를 맞아 공동주택에 적합한 머피침대나 공간거주적합성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로오틱가구, 최적의 수면조건에 안락함에 슬립트랙커까지 갖춰진 침구나 현재도 개발중인 미래의 침구인 캡슐침구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된 모습의 침대가 우리 삶에 자리매김할지가 기대가 되었다.
이 책 <침대 위의 세계사>를 통해 집 안의 침대가 있는 나만의 독립된 침실이 어떻게 발전되었지를 알고나니 더 특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여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 침대형 좌석공간이 있는 퍼스트클래식이 있는 비행기나 침대차가 있는 철도여행은 당장 바라지도 않는다. 침낭하나 담요하나 들고서라도 자연을 벗삼아 잠시 잠깐 캠핑이라도 다녀오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진짜 침대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 <침대 위의 세계사>를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