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의 소설 문득 시리즈 4
김유정 지음 / 스피리투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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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가족끼리 강촌으로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레일바이크를 타며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도착한 그 곳에서 우리는 김유정을 만났다. '김유정 문학관'을 통해 본 그는 [동백꽃]이 주는 강렬한 인상처럼 불과 2년 남짓한 작가 생활 속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30여편의 단편을 쓰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1930년대의 하층민들의 고단하고 궁핍한 생활들을 통해 전혀 예상불가한 반전의 전개와 결말, 그리고 비속어와 속어를 적절히 사용한 작가만의 특이한 언어유희들을 통해 기발한 웃음과 해학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어 사실 그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갖게 해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그의 작품들 중 [동백꽃]이나 [봄봄]과 같은 유명한 작품은 한 두편 정도는 읽어봤지만, 아직도 못 읽어본 그의 소설이 많았기엔 이번에 읽게 된 소설 [김유정의 소설 ; 떡]이 반가웠던 건 그런 이유였다.

도서출판사 공명의 문학브랜드 '스피리투스'에서는 이상, 프란츠 카프카, 에드거 엘런 포, 그리고 김유정과 같이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우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며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문득 시리즈'를 출간하였다고 한다. [김유정의 소설 : 떡] 역시도 문득시리즈 중 하나로 [동백꽃]과 [봄 봄]을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소설을 함께 엮어 만든 책이다.

[떡]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해 굶는 것이 일상인 7살난 옥이는 이웃 개똥이네 주인 도삿댁 작은 아씨에게 이밥과 국, 팥떡을 얻어먹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배가 부름에도 처음보는 백설기를 보고 참지 못하고 꾸역꾸역 먹다 체해 죽을 뻔한 이야기, [만무방]은 집도 자식도 농토도 없는 전과사범인 응칠이가 어느 날 자신의 친동생 응오네 땅 벼를 훔친 도적으로 몰려 의심을 받게 되며 뒷조사를 하던 차, 알고보니 소작농으로 살던 가난한 동생 응오가 자신의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려도 의원에 갈 돈이 없자 자신의 밭의 벼를 밤에 몰래 들어가 훔쳐 도둑맞은 걸로 소문을 내게 해, 자신이 소작한 벼를 주인에게서 조금이라도 안돌려주고자 자작극을 벌이는 서글픈 소작농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외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키 작은 점순이가 크면 결혼시켜주겠다고 약속한 장인에게 돈한푼 못받고 3년째 일해주는 사위이야기 [봄 봄]과 교과서에 실린 고추장물 먹이며 닭싸움시키는 [동백꽃]을 포함해 비록 좀 못생겨도 일꾼 열다섯을 낳아줄 소중한 사람으로 결국 인정하는 남편의 이야기 [아내],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연심을 드러내며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삶의 고단함을 잊고 행복을 느끼는 [생의 반려], 셋방살이하는 세입자들과 밀린 방세를 받으려는 주인과의 갈등을 통해 하층계급의 고달한 삶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따라지], 마지막으로 극심한 가난과 무지로 인해 쓸쓸한 웃음을 유발해내는 [땡볕]이 실려있다.

100년도 안된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가난하고 빈곤한 서민들의 삶이 너무도 잘 묘사되어 있어서 김유정의 소설이 민중에 뿌리를 둔 민중문학소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끼니는 고사하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아이는 아버지 앞에서 매번 주늑이 들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끝없이 먹기를 갈망했으며, 소작한 곡식을 주인에게 바쳐야 해 아픈 아내를 의원에게 데려갈 돈이 없어 자신이 일군 땅의 벼를 몰래 훔쳐 도둑맞은 걸로 둔갑시켜야 하는 고달픈 소작민의 삶은 너무도 처연하게 느껴졌다. 10년씩 데릴 사위로 데려다 일꾼으로 부리는 장인도 어이가 없었지만, 자식을 일꾼으로 보고 많이 낳아 기르려는 부모 역시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과는 너무도 많은 변화를 절감하게 했다. 뱃 속의 아이가 사산이 된 것도 모른채 병이 고치기 어려울수록 더 많은 돈을 준다고 생각하며 땡볕에 지게로 아픈 아내를 싣고 병원에 데려가 돈을 요구하는 무지한 부부이야기는 너무도 짠하고 씁쓸하게만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김유정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인물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이들의 비참하고 처절한 가난과 슬픔을 통해 해학과 비애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전통적인 민중예술로 승화시켜주는 듯한 느낌을 함께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신청부'(근심이나 걱정이 많아 사소한 일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 '비대발랄'(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여 간절히 청하여 빎), '궐자'('그'를 낮추어 부르는 말), '만부방'(염치없이 막되 먹은 사람), '기지사정'(즉을지경)과 같은 단어들을 보면서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바뀌고 있는지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김유정 소설은 매번 느끼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김유정만의 필력과 놀라운 반전 결말은 언제나 놀라움을 선사한다. 사실 짧은 단편들은 시간적인 제약에 쫓기는 이들에게조차도 부담이 적다. 손에 딱 쥐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책인데다 현대문학의 절정을 보여준 김유정의 소설이니 읽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어보인다. 이 책과 함께 <문득시리즈>, 다른 책도 읽어보리라 마음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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