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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평점 :

자라면서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순간순간 답답함을 느꼈고 내가 만일 어른이 된다면 아이의 이야기에 귀기울일수 있는 사람이 될거라고 자신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이제 그때의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들어선 내 아이는 나와의 대화에서 간간히 답답함을 토로하곤 한다. 내가 그토록 자신했던 소통이 내 아이에게는 그 때의 우리 엄마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 모양의 마음>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되게 해주었다.
시공사의 <세 모양의 마음>은 설재인 작가님의 첫번째 신작장편소설로, 답답한 현실 속에서 세가지 각기 다른 모양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진실된 우정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내고 있다.
15살의 유주는 5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가 낯선 남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던 그때의 남자가 들어올려주던 발뒤꿈치가 낫지않아 '절름발이' 또는 '절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사건이 있은 2주후 그 남자는 심장마비로, 당시 미숙아로 태어난 남동생은 사흘만에 사망하게 되며서 모든 실패와 실수, 부족함과 냐약함을 대표하는 인물로 가족들에게 인식이 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유혹으로 5살 때의 유괴당할 뻔한 상황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상미는 피시방이나 학원 갈 돈은 물론이고 휴대폰 살 돈 조차도 없이 가난한 부모를 탓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서로에 대한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15살의 유주와 상미는 여름방학동안 덥고 답답한 집을 피해 동네 도서관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두 친구에게 삼십 대 후반의 여성 진영이 밥을 사주겠다며 다가오게 되면서, 우연찮게 셋은 함께하며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며 친구가 된다. 개학 후 수련회를 빠지게 된 두 사람은 진영의 고시원에서의 그들만의 2박3일 수련회를 계획하게 되고, 의도치 않는 화재사고로 진영과 얽힌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셋의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태어나자 죽은 동생이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까지도 유주에게 언제나 '동생잡아 먹은 년'으로 몰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은 다소 시대적 흐름과 역행하는 듯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유주의 모든 실수와 실패, 부족함과 나약함은 언제나 죽은 동생과 비교되어 더욱 도드라졌다. 울음 한번 제대로 울지 못한 남동생은 부모님의 상상 속에서 모든 면이 완벽한 그야말로 이상적인 아들로 자라난 것일까. 네 동생이라면 그러지 않았을거야. 네 동생은 너처럼 멍청하지 않았을거야. 네 동생이라면 이렇게 속 썩을 일도 없었을텐데. 네 동생이라면, 네 동생이라면.....' (p.11)
또한 자신이 10년 동안을 쫓아다녔던 유주의 SNS속의 삶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는 진영의 마음역시 편하지 않았던 상황은 한두마디의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만큼 복잡해보였다. 또한 두 아이들을 통해 열다섯살의 자신을 들여다보다 보게 되는 진영이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 더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거짓말하는 어른, 나는 유주를 알고 유주에게 다갔던 어른인데. 진영은 자꾸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둘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후회와 후회하지 않음의 사이. 그 가파른 경계를 수천번 오갔다. '(p.189)
도서관에서 쫓겨난 돈한푼 없는 10대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오래쉴 수 있는 곳은 이 도시에는 아무곳도 없다며, 상미는 유주 뿐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어른같은 말을 뱉어내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걔는 아직 열다섯살 밖에 안됐는데 이미 세상의 어떤 것도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그걸 알것 같긴 한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못되게 구는거고요. 그러니까 봐요. 불쌍한 사람끼리 미워해봤자 뭐해요.'(p.107)
셋이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뭉클해질수 밖에 없었다.
'처음이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못생겼어. 어디서든 사랑받지 못한 얼굴이야,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은것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그 다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유주를 따라다녔다는 말은 진심처럼 느껴졌다. 부모보다도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는 진영의 말처럼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루 아침에 변화를 꿈꾸기는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이라는 사랑과 관심이 있는 한 서로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삶을 꿈꾸지는 않더라도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도서는 반드시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 청소년을 둔 부모님라면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 더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 될거라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