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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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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제에서 요약했듯이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이다.
자폐스펙트럼과 ADHD를 가지고 있는 저자는 축구경기를 관람하다가 사회 집단에서의 인간의 행동방식이 ‘단백질‘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열역학 제2법칙으로 정리정돈이 되지 않는 방을 설명하며,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한다.
자신을 지구라는 행성에 떨어진 외계인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 더 고군분투했을 저자의 마음을 책 속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고 명쾌한 통찰에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위로가 되기도 했다.
p.257 아마 관계가 무너졌다고 해서 우리도 무너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가장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화학에서의 정의에 따르면 결합이나 원자 정체성의 변화는 상태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상태의 시작이며, 새로운 결합 가능성을 위한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도 똑같다. 관계가 부서지면 따뜻한 우유 한 잔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위안받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결합이 부서지더라도 우리는 항상 가장 인간적인 능력을 간직할 것이다. 새롭게 관계를 맺고, 새 친구를 찾고, 다시 사랑할 것이다. 우리의 바깥 껍질은 다음 전자를 주거나 공유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짧게 언급되는 ‘강력‘의 존재가 인상깊었다.
*강력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원자는 분해되고 따라서 우리도 분해될 것이다.
*양성자가 서로 밀어내게 하는 전자기력보다 훨씬 센 강력.
*강력은 가장 강력하지만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인간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나는 강력이 우리를 하나로 붙들어주는 가장 본질적이며, 뿌리 깊고 강력한 가치인 사랑, 충실함, 동질성, 신뢰 같은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강력 그 자체처럼 인간은 이런 가치들을 볼 수 없고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인간의 닻으로 기능하는 이런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만큼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는 내부에서 나오는 강력이다. 때로 온 세상이 우리를 무너트리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강력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저자는 강력을 우리를 관계 맺게 하는 강력한 힘이자 가치로 보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이해했다. 관계 이전에 우리 각 개인이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힘과 가치가 아닐까 하고... 최근에 읽은 맹자의 성선설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가끔 나의 본질이나 자존감에 의문을 가지게 될 때 강력의 존재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과학적 진리이니까. 이미 나는 나 자체로 충만하다는 믿음.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나아가보자는 용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