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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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밸러드의 작품이 꾸준히 번역되고 있네요. 일찍이 2000년대 후반에 종말 3부작 [물에 잠긴 세계], [불타버린 세계], [크리스탈 세계]가 문학수첩에서 나왔었고... 당시 [하이라이즈]라는 괴작도 함께 소개됐죠. [하이라이즈]는 톰 히들스턴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몇 년 전에 개봉했던 걸로 기억하고요. 물론 소설보다 재미는 없었지만


이 후 현대문학에서 밸러드의 단편집도 내줬고... , 중간에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로 유명한 [크래시]도 출간이 됐죠. [크래시]는 저도 원작을 안 읽어 봤네요. 아마도 크로넨버그의 영화가 재밌었으면 소설도 읽었을 텐데... 대딩 시절 본 영화가 (예나 지금이나 크로넨버그를 무지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개차반아니 댱췌 이해가 안 가서리... 아예 영화를 안 봤더라면, 밸러드의 작품이니 [크래시]도 당근 읽었을 거 같습니다만...


각설하고, 감사하게도 작년부터 현대문학에서 JGB 걸작선을 발간해 주고 있네요. 그 첫 작품 [콘크리트의 섬]을 기쁜 마음으로다 읽었습니다. [헬로 아메리카]와 함께 구입했지만, [헬로 아메리카]는 처음 듣는 작품인지라, [콘크리트의 섬]을 먼저 픽한 건 네추럴한 선택이죠. 글구 무엇보다 [콘크리트의 섬]의 출간이 너무나 반가웠고요. [콘크리트의 섬]은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척박한 조선 땅에도 번역 소개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전설의 판본을 저는 구경도 못 해 봤죠. 구하기 졸 어려운 책이라 재출간만 오매불망 기다렸고, 드디어 작년에 나와 버린 거죠.


저는 사실 [콘크리트의 섬][믈에 잠긴 세계], [불타버린 세계], [크리스탈 세계]와 같이 종말 시리즈에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역자 후기에 따르면 [콘크리트의 섬][하이라이즈], [크래시]와 함께 도심재난 3부작에 속한다고 하네요. [크래시]...? [하이라이즈]...? 읽기 전에 알았음 살짝 불안했겠습니다요.


제가 좋아하는 벨러드의 종말 3부작은, 정말로 종말이 와버린 세계에서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죠. [물에 잠긴 세계]는 빙하가 녹았었나...? 해서 세상이 물에 잠겼고, [불타버린 세계]는 지독한 가뭄으로 인해 바다가 말라버린 세계였어요. [크리스탈 세계]는 설정이 좀 독특한데... 모종의 이유로 (무슨 이유였는지 생각이 잘 안 나네요) 세상이 점차 수정으로 변해 가는제목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죠. 개인적으로 종말 3부작 중에서는 [불타버린 세계]가 가장 인상적이었고요.종말 3부작이 아닌 도심 재난 시리즈의 [콘크리트의 섬], 세상이 콘크리트로 덥히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콘크리트 고속도로 사이 작은 섬에 고립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로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답게, 진짜 고속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내고 섬에 조난당한 한 불쌍남의 고독한 생존기이자 탈출기예요. 이게 말이 되는 설정이냐 반문할 수 있는데, 물론 말이 안 되죠. cctv, 휴대폰 따위가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뻥이 심합니다. 하지만 벨러드의 다른 SF들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죠. 세상이 수정으로 변하다니요.


밸러드의 SF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SF가 아니라 독특한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으로 사고실험을 하는 그런 SF. 말이 좀 꼬이는데... 덕분에 취향을 많이 타는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벨러드는 독특한 세계관과 팬층을 지닌 작가인 것 같습니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일단 끝까지 읽으면 쉽게 잊혀지는 작가는 아닌거죠.


밸러드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묘사, 시적인 문체, 독특한 캐릭터 설정은 [콘크리트의 섬]에서도 돋보입니다. 배경인 교통섬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하고 변화하며 탈출을 저지하는 것 같고, 인간군상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한두 개 빠졌거나 비밀스럽고, 어딘가 뒤틀려 있어요. 주인공이란 인간은 마치 일부러 사고를 내서 스스로 섬에 고립됐고, 탈출에 별로 진심인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결정적인 탈출 기회를 여러 차례 허무하게 날려버리기도 하죠. 읽다 보면 SF라기 보다는 싸이코 드라마 같아요. 크로넨버그가 [크래시]말고 이 소설을 영화화했으면 더 볼만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순문학과 SF의 경계에서 독특한 입지와 문학성을 쌓아올린 J. G. 밸러드. 밸러드의 작품세계가 대중성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벨러드의 글은 시적인 반면 진행이 좀 느릿느릿하고 나른한 느낌인데... 그래서 긍가 한편으론 권태롭기도 하고, 살짝 변태스럽기도 하죠. (? 그래서 [크래시]...? ) 하지만 [콘크리트의 섬]은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 분량도 짧아서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읽힙니다. 주인공이 결국 섬을 탈출 했는지 안 했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탈출했든 섬에 남았든, 어느 쪽이든) 희망적인 톤의 결말은 뒷맛도 깔끔해요. 이 정도 재미라면 잘은 모르지만, 밸러드의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소설군에 속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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