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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 평범한 나날을 깨워줄 64가지 천재들의 몽상
김옥 글.그림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21세기북스 서평단에서 모집했던 신간인데 예술을 다루고 있어보여서 냉큼 신청했다. 작가 예술 감상 경험 이후 소회를 정리한 짤막한 글을
담고 있는데 작가의 블로그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예술 영화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나는 좋았다. 블로그라고
했지만 감상 깊이가 얕지 않으면서도 공감 가며 여럽지 않게 술술 읽힌다. 요즘 페미니즘 담론도 활발하지만 극히 여성 입장에서 쓴 글이라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읽기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 실은 여러 예술 작품은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혹은 저자가 작품
속에서 유독 그러한 요소를 읽어내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인데 거의 모든 구성원이 안 보이는 척하며 지내는 상황, 알 듯하다. 책 제목이 이미
작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읽을지 말지 선택은 독자 몫이다.
"무표정한 고교생 유미, 그녀는 강박성 정신장애로
물건을 훔친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유미는 세상 모든 게 그저 뻔하고 시시할 뿐이다. 같이 놀던 남자들이 혼자 일방적으로 주절거리면, 묵묵히
듣다가 발로 걷어차버리는 게 취미인 그녀. 히데노리가 웃는다면 유미는 무표정하다.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다.
일본 영화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은 돌파구 없는 10대들의 성장통을 그려낸다. 재일 한국인은
히데노리가 따돌림을 당하는 큰 이유다...
현실은? 다수가 괴롭혀도 좋다고 정한 사람은 맞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은밀하게 정해버린 사회에서는, 존재 자체가 이미 죄다. 그걸 견디고 갚아주라니 말이 될까? 똑같이 민족 차별을 감내하고 살아왔을
그들은 아들을 방관한다. 헤쳐나갈 방법은 스스로의 숙제이기에, 알아서 잘 살아남길 바랄 뿐이었다."
178-179쪽.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영화이고, 가끔 소설, 사진전이나 그림 전시회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나도 미학 관심자라 항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예술'은 무엇을 지향해야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 '예술과 도덕' 단원에서는 순수(유미주의)
예술과 사회참여 예술로 구분해 소개하고 있다. 예술이 꼭 아름다워야하느냐는 문제는 칸트 미학에서 말하는 '쾌, 불쾌'와도 연결되는데 예술 작품이
그야말로 예뻐서 감각이 만족할 때만 아름답다고 말할지, 아니면 여기 저자의 말처럼 쾌감을 주는 아름다움 외에 다른 의미를 주는 예술 작품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미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는 "마크 로스코전" 평에서 자신은 형체를 명확하게 그린 구상화를 좋아하고 추상화는
불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토 딕스가 그린 사회참여 메시지를 담은 표현주의 그림이나 마크 로스코 그림 같은 관념적이며 극단적인 추상화를
좋아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는 형체를 똑같이 화폭에 옮기는 일은 얼마간 의미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술 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토 딕스는 사회 속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딕스는 연민과
표현주의자의 절망을 결합헤 당시 악몽 같은 독일의 현실을 화폭에 담아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절망하고 분노해야 마땅한 것들에
대한 교묘한 기만을 폭로한다. 무엇보다 전쟁의 참상을 신랄하게 고발한 그의 반전주의는 나치 정권의 분노를 사고 핍박 당하는 이유가 되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는 최강 독일제국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위대함에 예술 또한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미술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적 신화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데 동원되었고, 이른바 '나치 미술'이라 일컬어졌다.
새로운 현대 미술의 다양한 사조들은 갑자기 모두 반동이 되었다. 1937년 나치 정부에서 주최한 퇴폐
미술전은 그에 대한 보복이었다... 퇴폐 미술전에 포함되었던 딕스의 그림. 이유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아서였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미술과 예술을 일컬어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표현하지만 오토 딕스의
작품은 '미술'은 무엇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현대 미술사조의 한 획을 긋는 딕스의 그림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생각의
강렬함은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231-233쪽.
책 제목이기도 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갑자기 불거진 홍상수, 김민희 관계와 그로 인한
홍상수 가족과의 갈등 기사 때문에 덩달아 주목을 받은 지난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대한 감상에 저자가 붙인 제목이다. 개봉 당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였기 때문에 요즘 sns에서 마녀사냥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안타깝다. 누가 옳다고 판단하기 조심스럽지만 일련의
사태를 통해 일단 홍상수 감독이 정말 리얼하게 영화를 찍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관객들은 확인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행태는 영화 속 사람들이나 영화 밖 우리나 동일하다. 나는 그 점이 정말 리얼하다고, 그래서 홍상수 감독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실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고정된 진실은 애초 존재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40쪽.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는 작가는 감상문 한 편 한 편에 그 작품을 보여주는 그림 한 편씩을 예쁘게 그려서 얹었다. 다시금 그림 잘 그리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지는 지점이다. 나도 본 작품("은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블라인드", "빅 아이즈", "불량공주 모모코",
"마크 로스코 전")에 대한 평은 특별히 공감했고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평 중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글들도 있었다. 책을 받자 마자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평일에는 서평 정리할 여력이 부족해 이제 정리하고 있어서 기록 남겨두고 싶었던 부분을 많이 잊어버려
아쉽다.
제 주력 블로그는 blog.yes24.com/odie42입니다.
원문 출처: http://blog.yes24.com/document/8786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