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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평점 :

다산북스 나나흰에서 안겨준 이 책을 이야기하려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오베라는 남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출간
소식을 접하고 '아, 미션도서겠구나' 예감하면서 속으로 좀 환영했다. 소설을 일부러 찾아 읽는 사람이 아닌데 전작 "오베라는 남자"에서 느껴졌던
북유럽(사회 민주주의) 특유의 '함께 살자'는 가치관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관을 배우고픈 한 외국 작가가 쓴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을 문학적으로 잘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이번 신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도 그런 이야기이기를 바랐다.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훈훈한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대를 충족한 독서였다.
* 동화: 이야기로 비유하기
"'싫다고 말할 줄 알았던 소녀'는 엘사가 맨 첨으로 들은 깰락말락나라의 이야기 중 한 편이었다. 여섯 개 왕국에
속하는 미아우다카스 왕국의 여왕에 얽힌 이야기였다. 처음에 여왕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공주였는데 안타깝게도 어른들이 그렇듯
나이가 들면서 겁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렇듯 효율성을 사랑하고 갈등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미아우다카스 안에서 모든 갈등을 금지시켜버렸다. 모두들 언제나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했다. 거의 모든
갈등이 누군가가 내뱉은 '싫다'는 말에서 비롯되기에 여왕은 이 단어마저 법으로 금지시켰다. 누구든 이 법을 어기면 당장 거대한 '반대론자들의
감옥'으로 끌려갔고, '찬성론자'라고 불리는 검은 갑옷을 입은 수백 명의 병사들이 수시로 순찰하며 어디에서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속했다.
하지만 여왕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싫다'뿐 아니라 '아니다' '아마' '어쩌면'까지 이내 추방했다. 이런 단어들을 쓴 사람은 당장 감옥에
갇혀서 평생 두 번 다시 빛을 볼 수 없었다." 179쪽.
문법을
좋아하는 아버지 딸인 엘사는 '고품격 문학(판타지 슈퍼히어로 물)'을 매우 즐겨 읽는다. 그런 엘사에게 정서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할머니는
상황을 비유로 풀어 엘사가 용기 내어 싸울 수 있게 돕는 '깰락말락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판타지가 아니라 사실 실존
인물들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엘사는 아주 나중에 깨닫는다. 기사가 용과 싸우면서 나라를 지키는 이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 신화 같다. 언어에
흥미 있는 엘사에게 나라 이름부터 의미가 있는 이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미시
권력, 세밀한 통치 하에서 눈치 보지 않고 고통을 말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요즘이다. 이 와중에 읽은 인용한
부분이 사이다처럼 상쾌했다. 비유이지만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을 죄악 시 해서 오히려 갈등이 곪아
터지게 하거나 을은 고통 받고 갑만 편안하기, 반대하면 갈등이 생긴다며 아예 '싫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만들기와 같은 방책은 우습기까지 하다.
누군가의 마음속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하지마'라는 단속이 늘어날 때 공동체는 고통 받는다.
* 세대 차이
"할머니는 효율성이나 경제성에 열광하지 않았지만 혼란이 벌어지면 모두들 할머니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의사들은
멀쩡한 날에 죽어라고 할머니를 멀리하다가도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면 군대처럼 할머니의 지휘를 따랐다. 있음직하지 않은 비극은 있음직하지 않은 슈퍼
히어로를 낳기 때문이다." 201쪽."
오베라는
남자"처럼 여기 등장하는 할머니 역시 효율성이나 경제성을 경멸하고 인간이 더불어 살며 훈훈했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이 시대가 잃어버린 점들을
일깨워준다. 이 이야기는 보물(편지)찾기를 통해 엘사에게 옛날 더불어 살고 서로 도와 생존하던 생활 방식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책을
아이패드로 읽는 똘망똘망한 'M세대' 엘사는 자주 할머니와 세대 차이를 겪고 싸우지만 엄마, 아빠 세대를 넘어서는 할머니의 밀어붙이는 언행을
좋아하기도 한다. 개인주의를 신봉해 서로 너무 조심하는 분위기인 현대 사회에 할머니는 마구 오지랖 부리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 왔다.
그리고 엘사에게 슈퍼히어로로 남았다. 할머니가 그 시대 드물었던 여성 의사였고,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가 왔을 때 몸 사리지 않고 사람들을
구했다는 사실을 엘사는 뒤늦게 알게 된다.
*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유쾌한 혁명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에서 우라지게 많은 것들을 하면 안 된다고 했겠지. 그래도 너희 할머니는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너희 할머니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도 사람들은 여자들이 무슨 빌어먹을 투표냐고 했지만 지금은 여자들도 투표를 하잖냐. 너더러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 하는 개자식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맞서 싸우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지게 밀어붙이는 거야."
414-415쪽.
할머니
언행을 따라오다 보면 '오베' 만큼이나 웃겨서 빵빵 터진다.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다소 짜증나기도 하겠지만 적당히 거리를 둔 제3자
입장에서 문학 작품을 통해 만나는 할머니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서 창의적인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주변
사람들과 줄창 싸웠는데, 오래 지나 되돌아보니 어그러진 면을 바로 잡기도 했고 웃긴 추억이 되기도 했던 사건 사고였다. 할머니를 알던 사람들은
알프가 말한 위 대사처럼 할머니를 기억한다. 절대 악처럼 그려지는 '샘'마저도 살리는 결과도 할머니의 치밀한 계산 하에 있었을까?? 이
보물찾기를 겪으며 엘사네 아파트 사람들은 서로의 고통을 돌아보고 말을 걸고 알아가고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과정이 웃기고 결말이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저의
주력 블로그는 예스이십사입니다.
원글
출처: http://blog.yes24.com/document/854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