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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다산북스 나나흰 필독도서로 온 이 방대한 소설책 두 권을 최근 내내 읽었다. 이제는 서평 마감 기한이 다가와서 너무 피곤한데 독서를 미룰
수 없었다. 재미있는데 새학기라 차분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 작품 말고는 요즘은 소설을 굳이 찾아 읽지 않는데,
작년부터 큰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한다고 신간 소설을 읽을 기회가 꽤 있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다 읽고 보니 사랑
이야기였다. 자신과 영혼까지 닮았기에 만나면 두 배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 사이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작가가 정말 치밀하고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돌고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디가 크라운 호텔에 들어가 12명 비밀
대화에 끼게 된 점 부터 운명이었던 듯 전지적인 작가 계산 속에 들어 있었음을 2권 후반에 오면서 알 수 있었다. 무심코 읽었던 대화와 성격
묘사, 특히 작가가 '이 행동은 실수'였다고 짚어두었던 부분들이 법정 공방 장면에서 타이밍 절묘하게 쓰인다. 1권 첫 장면에서 무디가 크라운
호텔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이렇게 아귀 맞게 마무리되기 힘들었을 테다. 무디가 보여준 신중하고 치밀하게 변호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이야기 앞에서부터 뒤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언행을 신중하게 하는 그 모습이 말이다.
점성술과 별자리에 대해 잘 몰라서 읽는 내내 아쉬웠는데 만약 잘 아는 사람이 읽는다면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느껴질 듯하다. 2권에서는
강령회(영혼을 불러 대화하는 의식), 점성술, 영혼에 대한 낭만적인 의견이 1권보다 좀 더 자주 등장한다는 느낌이다. 이 2권 내내 작가가
세심하게 인물 성격 묘사를 하고 있는데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성향은 누군가에게는 드러나고 누군가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을 모두 말하기와 진실 말하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전자는 사실 가능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부분 읽을 때 그 주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대해 들었기에 아래 부분을 곱씹어 읽었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군요, 웰스 부인. 이렇게 공통점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타당성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만큼은 확인을 했죠. 하지만 정반대의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해요. 살아 있는 영혼은 어떠한가요? 죽은 사람을 '알 수' 없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무디는 미소를 띤 채 그 질문을 생각해보았다. 잠시 후 미망인이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무디 씨의 친구분인 개스코인 씨를 정말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스코인은 이 수사학적인 예시의 대상이 된 것에 굉장히 불만스러운 것 같았고 그렇게 대놓고 말했다.
미망인은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고서 두번째로 무디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디는 개스코인을 보았다. 사실 그는 알고 지낸 지난 3주 동안 개스코인의 성격을 굉장히 세세하게
분석했다. 그래서 이 남자의 지성의 범위와 한계, 성격적 특성, 수많은 표정과 습관의 경향을 안다고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이 남자의 성격을
굉장히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영혼을 아는 데에 3주보다는 더 긴 시간의 고나찰이 필요한 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211-212쪽.
특히 스테인스가 갖고 있는 몽상가적이면서 낭만적인 성향이 위기에 처했던 안나와 웰스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스테인스가 엄청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었거나, 치밀하게 계산하고 능력주의적인 성공을 노리는 사람이었다면 결말은 달라졌을 테다. 모르는 타인 일에 개입하기도, 사랑을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테기 때문이다. 아래 묘사를 보면 스테인스야 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의 타고난 명랑함은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딱히 도덕적인 기반을 갖고
있진 않았다. 대체로 그의 신념은 신중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었고, 친구를 고르는 데에도 딱히 까다롭지 않았다.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양한 성격과 상황, 관점과 만나봐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주 많은 책을 읽었고, 낭만주의 시대를
좋아하고 숭고함의 특성에 대해서 질리지도 않고 떠들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조를, 혹은 다른 어떤 특정 사조를 엄격하게 따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혼자 보낸 어린 시절 덕택에 에머리 스테인스는 어느 하나를 선호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삶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543쪽.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 속에서 선과 악은 분명했다. 뒤로 갈 수록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 초반에 그 악을 꽁꽁 잘
숨겨놓았다가 치밀한 계산 하에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악이 왜 악인지 설명해주기에 독자는 통쾌하게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다. 후반으로 갈 수록
작은 챕터들 분량이 점점 짤막짤막해졌고 설명이 듬성듬성한 부분이 있어서 궁금증이 생기는 지점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영상으로 만들어도 손색
없을 이 방대한 이야기를 쓴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