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제니 페이건 지음, 이예원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북이십일 서포터즈로서 신간을 받아본 주제에 매우 솔직한 서평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시설에서 지내는 청소년 일탈 행위가 담겨 있는 이 소설, 강도가 매우 세다. 뭣도 모르고 고등학생 때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었다가 충격 받은 기억이 났다. 무라카미 류 주인공은 성인이기라도 했지, 아마도 첫 작품인데 극찬을 받았다던 이 소설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 이 "파놉티콘" 속 주인공이 청소년들이라면 몇 배 충격이다. 발달 단계 상 감정적 혼란을 겪으며 센척하는 중2들을 종종 보며 살고 있지만 이 정도 급의 친구들을 만난다면 과연 앵거스처럼 유연하게 대할 수 있을까. 누가 이들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나 싶어 분량도 꽤 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로웠다. 최근 읽은 책 중 다 읽기 가장 힘들었다.

 

벤담이 제안했고 푸코가 감시와 처벌하는 사회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왔던 원형 감옥 아이디어 '파놉티콘'을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실화한다. 감옥 독방들보다 약간 높은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잡은 원형 감옥 중앙에 있는 감시탑에서는 죄수들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내내 항상 감시할 수 있다. 감시하지 않고도 감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감방에서는 감시탑에서 감시를 하는지 안하는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에서의 권력 차이는 감시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죄수는 감시를 내면화한다. 이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은 누군가 자신을 실험하고 있다는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특히 이 이야기 배경은 파놉티콘이라는 '시설'이다. 여러 이유로 보호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들을 '클라이언트'라고 부르며 보호하는 시설이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주인공은 욕-폭력-흡연, 음주, 약물남용- 길거리에서의 일 의 악순환 속에서 머릿 속으로 끊임없이 사고 실험을 한다. 이를 '생일 게임'이라고 부른다. 만약 내가 어디서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변주하는 게임인데 이 내용에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어서 안쓰럽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며 증오하고 저주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시설 독방에서 문도 꽉 닫지 못하고 지내야하는 삶 속에서 정체성 혼란과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위해 각종 일탈 행위들을 이 시설에 사는 청소년들은 공감하며 함께 행하고 있다. 주인공은 '실험'이 다음 타켓을 정하면서 한 명 한 명 '제거'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기 파놉티콘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데, 이 이야기 결말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현실인지 환상인지 나는 모호하다.  

 

약물을 복용하는 장면이 계속 나와 불편했기에 혹시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도 꽤나 하드코어한 장면이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야기는 클라이맥스가 있다기보다는 계속 높은 강도의 충격을 유지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의미들을 발견해 보여주는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아, 이 이야기가 그런 의미도 담고 있었어??' 생각하며 오히려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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