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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평점 :
이번에 다산북스 나나흰 미션도서로 나에게 온 책이다. 하루키나 베르베르 말고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 요즘인데 이렇게 통쾌하고 공감되는 책을
읽을 기회를 주다니 고맙다. 거짓말 안하고 손에 들자마자 다 읽었다. 밥 벌어 먹고 살고 있거나 먹고 살아야 할 모든 젊은이에게 강력 추천한다.
사실 표지 디자인 투표도 했는데 내가 투표한 일본 원작 표지는 채택이 안 되었구나. 띠지에 일본판 "미생", "송곳"이라고 비유를 했는데 회사
생활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제가 통한다. 안 그래도 전에 드라마 "미생"도 재미있게 보았고 요즘 드라마 "송곳"을 정주행하고 있는데
이 둘보다는 소설이 훨씬 이야기를 명랑하게 풀어간 구석이 많다. 사실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엄청 무겁고 어두워질 수 있는 요소가 많았는데 작가가
젊어서 그런지 (이 소설 등장인물이 선입견 갖지 말라고 부르짖었지만) 오사카 출신이어서 그런지 명랑 쾌활한 전개와 결말이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졌고 납득할 수 있었다. 아마도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 부분 본인이 겪었거나 또래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내 블로그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요즘 묘하게 진로에 관한 책을 종종 읽었다. 나는 가능하면 이직 없을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길을 찾을
고민을 비교적 적게 하는데 다른 일을 하면 어땠을까 종종 궁금해한다. 진로를 개척, 발견해야 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낭만적으로
자립하기의 의미에 대한 고민에 떠밀려 헬조선에서 사는 청년들, 학생들을 보면 답답하고 힘들겠다 싶다. 어제는 30대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1년 동안 거짓 출근을 하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기사와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 소설이 생각났다. 안팎으로 어떤
압박에 시달렸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어려운 상황이 올 때 천연덕스럽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만
있어도 좋을 텐데. 주인공이 엄마와 오랜만에 통화하는 내용이 참 좋았다. 어떤 낌새가 느껴져 걱정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음에 엄마 생일 케이크를
들고 집에 오라고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엄마였다. 물론 주인공이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 아픔을 먼저 겪은 친구였지만,
걱정을 티내지 않았던 엄마 반응도 좋았다. 나도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치여 밥 먹으면서도 눈물이 줄줄 나던 힘든 때 엄마가 굳이 "무슨 일
있어?"라고 캐묻지 않고 밥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어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나는 학급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더
놀라곤 하는데, 2016학년도에는 좀 더 자주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 어머나, 뭐 어떠니?
어머니의 대답에는 당혹감도 망설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잠깐만, 그렇게 간단히 말하지 마.
- 그게 뭐 별일이라고. 세상에 회사가 거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너무나 태연한 어머니의 말에 나는 맥이 빠졌다.
- 아니, 보통은 말리지 않나.
- 그야 네 인생인 걸. 네 생각대로 해도 되잖니.
- 그렇긴 하지만...
-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어. 아직 젊으니까." 169쪽.
가끔 '나이가 벼슬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자신이 겪어봐서 다 안다, 이렇게 해야 결국은 잘 된다며 특유의 확고한 기준이나
원칙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폭력이 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다양한 어른을 만나보면 다 그렇진 않던데 어떤 어른은 나이가 들 수록
인생관이나 사고 방식 틀이 점점 확고해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꼭 숫자인 나이 탓만은 아닐 테다). 이를 다른
말로 권위주의와 관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송곳"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속속들이 군대구나 싶어지는데, 이 이야기 주인공 회사 부장 역시
전형적으로 마초다운 센척을 보여주고 있다. 매사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언어 폭력을 일삼고 위계서열을 중시한다. 주인공에게 '패배자'라며
욕을 퍼붓는 부장에게 주인공이 받아치는 이야기는 정말 통쾌했다. 현실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근 지인들과 요즘 교무실이
너무 개인주의화 되었고, 세련된(칭찬 아니다, 비열, 교묘와 비슷한 의미) 통치술 때문에 말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나서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했다. 학교 뿐만이 아닐 테다. 주인공이 내 대신 화내주는 듯 엄청 매우 통쾌했다!!
""내 인생은 댁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딴 회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야. 내 인생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불쌍해서 마음이 아파졌다.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197쪽.
아무튼 여러 모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제목만 봐도 도살장에 끌려 가는 기분으로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이 쉽게 공감하리라
확신한다. 실제로 하고 싶지도 맞지도 않는 일을 할 때 주인공이 겪는 느낌을 읽으며 '나도 이런 적 많은데'라는 생각 정말 많이 했다. 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면 살 길이 막막해지겠지 불안하겠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며 전보다는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