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토리 트레이닝 : 이론편 ㅣ 스토리 트레이닝
손지상 지음 / 온우주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론편을 먼저 읽고 이 글을 쓴다. 사실 나는 작가이지만 작법서를 잘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나오면 그 즉시 내 안의 '어린이'가 땡깡을 부려서 마저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손지상 작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분에 대한 의리와 신념(?)으로 이론편을 무사히 다 읽을 수 있었다.
1. 소설, 쫌 써본 사람
만약 당신이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려고 노력한 티는 많이 나지만 역시나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 권의 작법서를 읽고, 그것들에 따라 소설을 쓰려 하고, 장편 하나를 쓰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더 맞는 책이다.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스토리, 스토리텔링, 전이, 낯설게 하기, 클리셰 등의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을 추천한다.
2. 쫌 써봤는데, 영 안 되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소설가의 자아가 있다. 없다고 해도 다들 있다... 그렇기 떄문에 자신의 소설이 반응을 얻지 못할 때 '왜 없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같이 소설 쓰는 친구들의 말도 잘 안 듣는다. 그래서 작법서가 필요하다. 이 책의 첫 부분에는 '공부'와 '스토리'의 차이가 나오는데 둘을 구분짓자면 이렇다. 공부는 추상적인 개념을 던져놓고 구체적인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 스토리는 반대로 구체적인 부분에서 시작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
2-1. 설정덕후가 실패하는 이유
덕분에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다. 소위 말하는 '설정덕후'들은 스토리를 쓸 때 강의안 짜듯 한다는 점. ㅇㅇ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건 블라블라하고 블라블라해서~ 라는 것은 '공부시키기'지 스토리가 아니다. 야, 내가 공부하려고 읽냐! 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공부를 시키지 말고 스토리를 쓰자... (좋은 예로 권교정님의 만화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나 '매지션'은 설정이 꽤 방대하고 생소한데도 스토리에 잘 녹아 있으니 군말 없이 잘 본단 말이야. 내가 매지션 첫머리에 라후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하는 이야기 나왔으면 책장 덮었지...!)
3. 그런데 이거 좀, 어려워요
원래 이 책이 엄-청나게 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미친 듯이 쳐내서 얇은 책 두 권이 되었다고. 그 탓에 낯선 단어들을 한 줄로 딱 설명해버리고(심리학 용어와 그 정의를 한 줄로 끝내버린다) 밑에 그 단어가 줄줄이 등장하는 문장이 나오는 탓에 나는 자꾸 페이지를 접어놓고 앞 페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이 책이 조금 더 길었다면 그 용어들 '공부'도 쉬웠겠지만 분량이 길면... 작법서... 안 팔려요.
4. 이 책을 읽으면 심리학에 도움이 왜 되죠 ㅋㅋㅋㅋ
첫머리에 나오는 부분이 '굿캅 배드캅' 인데, 어르고 뺨 치며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수사기법이다. 한 놈은 겁 주고 한 놈은 자자 그니까 나한테 말해봐 오구오구^ㅅ^ 하는 방식인데... 이거... 얼마 전에 점 보러 갔을 때 무속인이 나한테 쓰던 그 방법이라 한참을 웃었다. 정색하면서 호통을 치고, 좋은 말을 해 주고, 그러다가 또 표정을 굳히고. 소위 말하는 밀당의 기법. 여러분, 심리학은 우리 주위에 있었어요.
5. 대가들이 스토리텔링 작법서를 쓰면 오히려 어려운 이유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뇌의 작용으로 설명해 준다. 체스 챔피언에게 '대국 상태의 체스 말'과 '마구잡이로 배열된 체스 말'을 보여주고 복기하라고 했을 때, 챔피언은 대국 상태는 잘 기억하지만 마구잡이 배열은 보통 사람 수준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좌뇌와 우뇌, 패턴화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많이 써 보고 그럭저럭 쓰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 작법서를 그럭저럭 이해한다. 그 '패턴화'와 '알고리즘화' 과정을 이미 자기도 모르게 습득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작법서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어 나도 그랬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6. 그러니까 이것은, 좀 써보고 실패하고 그러나 계속 쓰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책
말랑한 책은 아니다. 어려운 심리학 용어가 등장하고(손지상 작가는 심리학 전공)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자꾸 나온다. 하지만 작정하고, 이거 하나만 떼어보자 싶은 기분으로 읽다 보면 중간중간 '으아...? 어?' 싶은 부분이 나온다. 과학의 힘과 심리학의 힘을 빌어 설명하는 '소설가들의 두뇌작용'이란, 시작은 좀 어렵지만 뒷맛은 즐겁다.
7. 메모하기 좋네
종이가 볼펜이 매우 잘 먹는 종이다. 덕분에 메모 잘 하며 보고 있다.
실전편을 읽어야 하는데. 일단 이론편을 한두 번 더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한 번으로 끝내기엔 조금 어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