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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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헤르만 헤세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 그리고 시인

1946년 노벨 문학상과 괴테 문학상 동시 수상

저서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아래서

표지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헤세를 봤을 때만 해도 몰랐다. 

이 책이 나에게 가혹할 만큼 철학적이고 심오하게 다가올지를 말이다.


많은 부분을 곱씹어야만 했다. 그냥 삼켜서는 소화시킬 자신이 없었다. 

읽고 또 읽고 아직도 삼키지 못한 구절이 대다수이다. 


어릴 적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호기롭게 '헤르만 헤세'라고 대답했었다.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린 지금은 그리 답하지 못하겠다. 



정확하게 이해되진 않지만 어슴푸레 느껴진 울림은 

인간에게는 고통과 행복이 공존한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을 알 거 같아?

고통이 있으니까 행복도 있는 거야.

대단한 걸 기대하고 그러지 마. 

사소함에서 기쁨을 찾고 알아차려. 

바쁘고 빠른 게 좋은 게 아니야. 


주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여유 그걸 느껴봐.

힘들다면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목차를 넘기자 마나 첫 장에 나오는 글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 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자기 전의 힘듦이 아침이 되면 작지만 빛나는 희망으로 변해있곤 했다. 아침이 주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헤세는 어머니 같은 밤이라고 표현했다. 


밤은 왕자를 구하고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어떤 날에도 밤은 기필코 온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가 그냥 헛말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날에도 생각이 많은 날에도 어김없이 밤이 오고 아침을 맞는다. 

말간 하늘이 그리고 내리쬐는 햇살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 준다. 


필사 노트에도 있는 구절이라 따라 적어봤는데 필사의 묘미랄까. 적으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p21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거창한 쾌락이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뭐가 되면', '무엇을 해야만' 등의 조건을 달면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끝없는 조건들만 따라붙는다. 시원한 바람맞으며 걷고 꽃구경하고 맛있는 커피 마시며 느껴지는 살랑거리는 즐거움들은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에너지를 준다. 




p45

잠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고 마법사이자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손길이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잠깐 조는 정도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또한 평생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절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가장 순진한 영혼을 지닌 어린아이 같은 사람일 것이다. 


불면증을 겪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도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영혼이 그대로 드러나며 충분히 놀라거나, 솔직한 감정을 의식하고,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런 밤들로 인해 인간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지도 모른다. 



소설과 시에 이어 그림까지 그렸던 헤세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은 그의 시와 그림 여러 편을 품고 있다. 


p46 밤의 로카르노



p59

낮 시간을 살아가면서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 동안 기분 좋고 생기 넘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일터로 향하면서 좋은 글귀를 읊조리거나 콧소리로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죄수는 도처에 널린 화려한 아름다움과 달콤한 유혹에 심신이 지쳐 있는 사람보다 마음속 깊이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연을 마주하고도 즐기지 못하고,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죄수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다. 언젠가부터 매일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일이 다르고 매시간이 다르다. 어떻게 다르지 충분히 느끼다 보면 죽을 듯 힘들게 하던 걱정들이 잠깐 사라진다. 하늘은 언제든 바라볼 수 있고 무려 무한정 공짜다.  




p167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일을 또 맞이하고 시작한다. 다시 행복을 맞기 위해서는 슬픔과 절망을 지나야만 한다. 




p280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처음에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과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달라졌다. 

'할 일을 언제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너무 바쁘게 살지 마.'로 읽었다가 할 일을 안 하고 시간이 지나갔는데 수요일이 왜 유쾌할까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할 일을 해야 하는 날만 힘들고 나머지는 다 유쾌할 수 있다는 건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화요일, 수요일은 유쾌하고 목요일만 불편한 건가.


필사 노트가 뒷부분에 있다. 

만년필을 꺼내 또각또각 따라 써 보았다.

 

책 전체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여기 있는 구절들을 읽고 적는 것이 삶을 견디는 기쁨이 되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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