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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ADHD, 경계선 지능, 상실과 애도 리얼라이프 시리즈
정은진 외 지음 / 리얼러닝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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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양육서로서는 보기 드물게, .양육시설에서 자라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게도  필요한, 일반 양육서들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을 다루고 있다. 특히 ADHD를 다룬 부분과 맨 마지막의 "상실과 애도" 부분은 백미이다. 


언론을 통해서만 간간히 접하던 ADHD를 전문적으로, 그러나 너무 전문적이지 않게 풀어내고 그 대응방법을 제시한 것도 좋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찾아보려고 하면,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만 주욱 나오기가 일쑤였고, 그 적용법을 말하기도 전에 정의와 분석과 연구만 한참 이야기하고는 끝나버리기가 쉬운데, 이 책은 "적용"에 대해 방점이 찍혀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또 애도란, 지금까지는 사별한 사람에 대한 감정적 표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감정적으로 애착되었던 상대로부터 이탈되었을 때, 책에서의 표현에 의하면 "찢겨져 나왔을때"가 상실이고, 그런 상실을 슬퍼하는 것을 애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책을 따른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물론 상실이고 애도가 적용되지만, 장난감을 잃어버렸을 때, 아끼던 강아지를 떠나보냈을 때, 이사로 친구와 고향을 떠나왔을 때도 역시 동일한 맥락이 적용될 수 있겠다. 살면서 그런 상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렇게 보면 상실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애도는? 그 갖가지의 상실에 대해 애도가 허용되고 있을까? 애도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억제되고있다. 앞서서 얘기한 대로, "누군가 죽거나 해야"하는게 애도라고 알고있었다.  따라서 헤어짐이나 잃어버림, 떠나옴 정도로 '애도한다'라고 하면, "유별나다" "감정과잉이다"라는 핀잔을 듣기 쉽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적 표현이나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는 사회적 제지를 받는다. 승진에 탈락한 사람이 화를 내고, 감정진압이 안되어 있을 때, "참으라"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 어떤 요소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승진탈락으로 인해, 슬픔이 지나치게 오래가면,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얼간이"정도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사실 감정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해결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타인이 보기에 별것아니고, 왜 그렇게 반응할까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로, 상실로 인한 감정은 매우 주관적이며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따라서, 타인이 이해되지않는 다해도, 그 사람에게는 매우 대단한 영역을 차지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가깝고 먼 사회의 기행들이 언뜻 이해될 것도 같다)

상실로 인한 애통함, 비통함, 슬픔의 감정은 애도를 통해 표현되고, 통과되어야 한다.


 애도하지 못해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어디로 갔을까? 저자들의 말에 다르면,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풀리지 않은 매듭처럼 사람에게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때로는 신체화되어 몸의 병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입은 괜챦다고 하는데, "머리가 이유없이 아프다"라고 하고, 아무런 감정을 안느끼는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는 전신두드러기가 나기도 한다. 또는 이유를 알수없는 일탈행동이나 중독적 현상을 보이기도 하겠다. 


따라서 부모의 이혼, 가정의 해체, 형제자매들이 떠남 등 인생의 크고작은 굴곡들을 어린아이의 시기에 겪어야 하는 아동들에게는, 우리 어른들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단히 큰 폭풍노도와 같은 심리적 마그마가 안에서 들끓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식은 양육시설 뿐 아니라, 일반사람 모두에게도 유용한 지식이다. 


양육시설에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도, 울림이 작지않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문제를 모아놓고 있는 곳이라서, 더 그런 필요성이 절박했을 수도 있다. 한두 가지 문제만 있어도 감당하기가 쉽지않을텐데, ADHD, 트라우마, 경계선, 장애아동 등 그런 아이들을 모아놓고 양육시설 선생님들의 노고가 새삼 크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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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꾸물거림에 대하여 리얼라이프 시리즈
정은진 외 지음 / 리얼러닝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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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는 건 흔한 일이지만, 집단안에서, 아동시설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또 다른 어려움들이 많다. 목말라하는 그런 선생님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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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d Air 16GB 실버(앞면 화이트) + 알라딘 전자책 2만원 구매권 - Silver(실버, 앞면 화이트) 2014 출시 신형 태블릿PC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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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터치감, 앱의 운용성능은 아이패드가 최고죠. 거기에다 무게까지 줄이니...더 볼 것 없이 아이패드 에어로 보는 전자책,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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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육 이야기 - 꼴찌도 행복한 교실
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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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교육을 직접 겪으면서, 우리교육에 없는 독일교육이 잘하는 것들을 잘 정리해놓은 책. 실제로 살지않으면 경험하기 힘든 내용이 있는데, 좋은 책과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책을 덮으며 두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당연히 우리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가? 였고, 또 하나는 과연 그렇게 독일교육이 우수할까? 였다.

 

우선 저자가 쓴 책만 가지고 판단을 한다면, 독일교육이 우수하다는 것에 거의 이론의 여지는 없어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독일교육이 우수하고 훌륭하다면 거기에 비교하여 한국교육은 문제투성이고 전혀 배울점이 없는가 하는, 뭔가 고약한 반발심이 은근히 든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느끼기는, 이 책은 독일교육에 대한 냉철한 관찰/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예찬에 가깝다. 거의 독일교육은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것처럼 서술되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교육은 그 사회의 문화적 뿌리와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 미래세대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담겨있어서, 유럽에서 잘 한다고 해서 금방 한국사회에 이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독일교육이 질적으로 우수하고 거기에 담긴 철학적인 깊이가 갖춰진 것은 잘 알수 있다. 계속해서 학업을 할 경우가 아니라면, 직업의 세계에서 일할 사람들을 길러내면 되기 마련이고, 쓸데없는 경쟁을 부추겨 어린 학생들을 인생의 초창기에 깊은 좌절감에 빠지지 않게 격려하는 시스템을 잘 갖춰놓았다. 교실의 "꼴찌"라고 차별하는" 분위기가 없는 이런 교육은 우리교육도 깊게 본받아야 될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사회가 구성한 교육은, 그 사회를 반영한다. 꼴찌라고 차별하고, 못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는, 아무래도 독일이 "경쟁" "우월"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국민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나찌의 국가사회당의 철학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약자에 대한 배려, 뒤처지는 일원에 대한 깊은 관심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본질로 보았지 않을까?

 

불행히도 독일에 못지않은 과거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재난의 시작을 스스로에게서 찾아야했던 독일과는 달리, 우리는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열강이라든가 일제라든가 공산주의라든가 하는 "외부"에서 찾았고, 따라서 독일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직도 학교폭력이라든가 입시위주의 경쟁이 대부분인 우리교육의 근간에는 "유교적 출세주의" 와 "힘없으면 굴복"이라는, 유전자에 새겨진 혹독한 역사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런 사회적 공감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교육이 전면적으로 바뀌게 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학교가 바뀐다고, 혹은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 바뀐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건 학부모와 교육에 대한 우리국민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일인데, 독일이 잘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글쎄. 그건 그렇게 간단치는 않는 일이다. 성교육과 동성애에 대해서 독일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알겠지만,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교육과 동성애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기반이 되는 '가족'을 흔들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우선 입법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경우는 아직 사회적 합의도 없이 자꾸만 입법화해서 법으로 강제하려고 하는 소수가 있어 사회적 통합을 해치고 있다. 이 점,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독일식 교육이 우수하다해도, 사회적인 합의가 없이 그 도입이 순탄하게 이뤄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교육이 단점이 많은 듯이 보여도, 이만큼 살게 된 배경에는 한국식 교육의 역할과 강점도 있을 터, 순순히 이 사회가 그것을 포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쉽게 포기하고 다른 방식을 도입하는게 꼭 나을지도 알 수 없다. 독일의 교육에 대한 합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책이 앞으로 나왔으면 참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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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로 출근한다 - 국제변호사가 말하는 글로벌 인재의 길
박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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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소수든 다수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시티즌들이 있다 (본문에서)

 

약 150여년전 1860년대, 조선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세의 전조앞에 전전긍긍했다.

오래된 왕조는 썩었으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관리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고, 왕조의 앞날은 캄캄했다. 시국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현실권력과 나라밖의 상황은 어느 일개인이나 한두 가문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중요한 때에, 왕실은 무기력했고, 권력을 쥔 자들은 개인과 일족의 영달만 위해 허수아비 왕을 농락했고, 관리들은 부패했으며, 신진세력은 형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농민들과 백성들은 구습과 낡은 전통에 매여있었다. 희망이 없었다.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이, 나라를 책임진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산업혁명과 민주적 정치체제를 갖추고 부국강병으로 힘을 키운 유럽 여러나라들이 세계로, 세계로 부와 영향력을 찾아 온세계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유럽에게서 배워 재빨리 신흥강국이 된 일본은 이빨을 드러내고 이웃의 무너져가는 왕조를 노리고 있었다.

 

이것이 150년전의 현실이었고, 일상이었다.

 

오늘날 소녀시대와 빅뱅의 노래가 나오고, 우리가 만든 스마트기기가 신문의 머릿기사로 수시로 나오는 시대가 오기까지는...일백수십년이 넘는 격동의 파도가, 온 강토를 수백번, 수천번도 넘게 지나가야 했다.

우리는 강토와 주권을 빼앗기고, 동포들이 산산히 세계로 흩어져 가는 걸 목격해야 했고, 남의 나라 재난과 전쟁에 우리민족이 제물이 되어 죽어갔으며,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열국이 우리의 미래를 재단했다. 식민의 경험은 분단으로 이어졌고, 그걸로도 모자라 온 나라가 치열한 전쟁터로, 잿더미로 변했다. 마을들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부셔졌다.  군인이 백만명, 민간인이 백오십만명이 죽은 끔찍한 전쟁이었다.

 

아직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과거는 정리되지 못한채, 열강에 의해 병합되던 그 쓰라린 기억을 안은채 나뉘어진 남과 북은 각자의 현대사를 걸어왔다. 한쪽은 자본주의세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압축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빈부차와 계층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또 한쪽은 전후 식민시대 동조자와 부역자를 일거에 처단하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지만, 강권적인 통치와 극단적인 이념추구를 멈추지 않아 사상유례없는 수용소같은 나라가 되었다. 국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지만 군사력으론 규모대비 사상최대의 군사국이다. 이 모순과 지랄같은 상황이 우리 한국인들의 유산이자 지금의 모습이다.

 

시험을 잘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좋은 직장을 얻으려는 희망과 더불어 누구나 세계사와 국사를 배운다. 그 지식이 나와 크게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기 힘들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누구나 바쁘니깐. 하지만, 여행이든 출장이든 세계를 다니면, 비로소 눈이 뜨인다.

서양은 잘 산다. 유럽에는 "부자였던" 흔적이 많다. 그리고 미국에는 "부자인" 증거들이 그득하다. 나라가 힘이 있고, 재력이 있다는 증거는, 가보면 안다. 몇백년된 성당과 건축물이 즐비하고, 박물관에 가보면 값진 명화들이 방마다 가득이며, 왕들과 왕비가 기거했다는 궁궐에는 세계각처에서 모아온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 그 뿐인가? 그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란.

미국인들, 그리고 유럽인들이 누리는 삶의 수준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 초탈한 도인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보통사람에겐 그네들의 삶이란 이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물안에서 늘상 보아오던 광경과, 그저 TV를 통해 소식을 듣던 것에서, 세계를 통해 받아들이는 현실은 자연스레 우리의 역사시간과 맞물려 내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는가보다. 저들은 뭐길래 저렇게 잘나게 사는가? 

 

아마 이 변호사도 그랬나보다.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국제무대에 오르기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출세의 계단을 밟았을 것이고, 올라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다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추구하는 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무리 알아주는 사람도, 남의 나라 공항에 도착하면, 그냥 "코리언"일 뿐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는 건 불과 10년, 15년이 안된다.

외국에 나가서 "코리언"이라 하면, 할머니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게 고작이었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그네들 눈에 한국인은 딱 두종류였다. 북한인. 남한인.

한국서 벤츠를 몰고다녔건, 한국서 다리를 둥둥 걷어붙이고 모내기를 하다 왔건,

우리는 그냥 "코리언"인 것이다. 앞에서, 혹은 등 뒤에서 "개고기를 먹는다지?"하며 빈정대는 자도 있었다. "늬네나라 쇼프로그램은 왜 일본하고 똑같냐?"하고 묻던 홍콩인도 있었다.

한때, 여행자들은 입막고 그냥 중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보이던 때도 있었다. 태어난 나라, 내가 자라온 나라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때였다.

그랬다. 앞서들어간 코리언이 뭔가 일을 잘하면, 뒷줄의 코리언은 그냥 덕을 보게 되어있고,

앞서 들어간 코리언이 추악하면, 뒷줄은 모두 "어글리 코리언"이 되어야 했다.

한국인은 개인으로도 존재하지만, 공동체로도 존재한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그 공동체의 기억으로 대접받는다.

 

107년전의 우리는 미개국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는, 비문명국이었다. 우리는 부자나라들 틈에 끼지도 못했다. 외교사절들은 왕이 파견한 우리 칙사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열국의 정상회담장에서 우리왕실의 대표는 그냥 구걸하는 처지였다. 공평과 정의를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거지대접이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었고, 정의는 우리편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공감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150년전의 세계는 과거가 되었지만, 우리의 삶과 풍요는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고, 이제 입장이 바뀐채 우리곁에 있다.

 

내 주변에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로 "망명온" 사람이 있다. 본국의 정치적 상황을 피해, 우리나라로 망명을 온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면, '이 사람은 피부만 검다뿐이지, 사실 우리네 김구 선생 아니면 이승만 같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편듯 들었다. 그 사람이 김구같이 될 지, 이승만같이 될지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이 찾은 곳은 유럽도, 미국도, 홍콩도 아니고, 한국이었다. 그리고 말한다.

"한국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 때, 그렇게도 우리네 선조들이 배우고 싶었던 나라가, 이제 우리의 모습, 우리의 나라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로 오기위해 이년여의 시간, 세개의 대륙, 여섯개의 국가를 지나왔다 했다. 

과연 우리안에, 그들이 바라는 모습, 그들의 기대에 걸맞은 우리가 있을까?

 

우리는 정의로운가? 나는 정직한가? 우리안에 공평함과  따뜻함이 있는가? 책임을 지는가?

 

책 겉표지만 보면, 마치 "국제변호사가 되는 법"같은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뭔가가 달라진다. 하지만 복잡한 이야기인데 쉽게 읽힌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나서는,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타인을 경험하고 세계와 부딪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50년간, 우리는 쉼없이, "발전된 나라"들을 동경하고, 모방하고, 추종하고, 때로는 버림받아가면서도 줄기차게 따라왔다.  놀리던 그들이 이제 머쓱해지도록, 우리는 지칠줄 모르고, 그리고 밤을 밝히면서, 그들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산업화, 근대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해왔다.

 

이제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시점, 그리고, 뒤에서는 보이지 않던 걸 이제는 보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젠 누구도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개척해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방법, 한국인들의 방식이 세계인들에게 채택되지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도록 이제 눈을 떠야 한다. 또 그것이 우리에 대한 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인들에 대한 기대와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는 일이다. 그들은, 소수이건 다수이건, 지위가 어디에 있건,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에 대해 응답하는(responsible)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이 있다. 우리는 세계인에게 빚이 있다. 그들은, 그저 한국이 경탄스럽고 부러워서 우리를 보는게 아니다. 사실 부럽고, 잘난건 우리보다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이 저만치 앞서있다. 잘 사는 건 스위스인이나 일본인들이 더 더 앞서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인이나, 유럽인들, 미국인들을 모델로 삼지 않는다. 그런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100년전에 한국은 볼품 없었다. 60년전에 한국은 볼품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박살이 났었다. 그런데, 이제?  역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가 한국인들의 염원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열망과 염원을 단연코 세계 최단시간의 속도로 이뤄내지 않았던가?  아시아인들은, 세계는 그런 우리를 경탄의 눈으로 보고 있다. "코리아를 보라."그리고 말한다. "저들또한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참 오묘한 역사다. 우리의 험난했던 과거가, 이제 우리의 자산이 되었다니.

 

우리에게는 찬란한 유산도 있고, 쓰리고 아픈 유산도 같이 물려받았다. 피흘리고 배운 수업도 있다. 친구도 있었지만,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백여년전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에 서있다. 서구유럽/일본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길에 도전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누구도 우리대신 선택해 주지 못한다.

국제변호사, 국제회계사, 국제기업인 같은, 뭐 거창한 그런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우리안에 있는 누구도 이제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 그 세상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세계가 그렇게 간다고 무작정 추종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난 150년간 비싸게 그걸 배워오지 않았는가. 한 자락의 혁신, 한 주먹의 새로운 생각도 다 코리언, 우리 가운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집에 한번 들렀다 가야 하지않나 생각된다. 좋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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