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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로 출근한다 - 국제변호사가 말하는 글로벌 인재의 길
박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어느 시대에나 소수든 다수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시티즌들이 있다 (본문에서)
약 150여년전 1860년대, 조선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세의 전조앞에 전전긍긍했다.
오래된 왕조는 썩었으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관리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고, 왕조의 앞날은 캄캄했다. 시국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현실권력과 나라밖의 상황은 어느 일개인이나 한두 가문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중요한 때에, 왕실은 무기력했고, 권력을 쥔 자들은 개인과 일족의 영달만 위해 허수아비 왕을 농락했고, 관리들은 부패했으며, 신진세력은 형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농민들과 백성들은 구습과 낡은 전통에 매여있었다. 희망이 없었다.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이, 나라를 책임진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산업혁명과 민주적 정치체제를 갖추고 부국강병으로 힘을 키운 유럽 여러나라들이 세계로, 세계로 부와 영향력을 찾아 온세계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유럽에게서 배워 재빨리 신흥강국이 된 일본은 이빨을 드러내고 이웃의 무너져가는 왕조를 노리고 있었다.
이것이 150년전의 현실이었고, 일상이었다.
오늘날 소녀시대와 빅뱅의 노래가 나오고, 우리가 만든 스마트기기가 신문의 머릿기사로 수시로 나오는 시대가 오기까지는...일백수십년이 넘는 격동의 파도가, 온 강토를 수백번, 수천번도 넘게 지나가야 했다.
우리는 강토와 주권을 빼앗기고, 동포들이 산산히 세계로 흩어져 가는 걸 목격해야 했고, 남의 나라 재난과 전쟁에 우리민족이 제물이 되어 죽어갔으며,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열국이 우리의 미래를 재단했다. 식민의 경험은 분단으로 이어졌고, 그걸로도 모자라 온 나라가 치열한 전쟁터로, 잿더미로 변했다. 마을들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부셔졌다. 군인이 백만명, 민간인이 백오십만명이 죽은 끔찍한 전쟁이었다.
아직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과거는 정리되지 못한채, 열강에 의해 병합되던 그 쓰라린 기억을 안은채 나뉘어진 남과 북은 각자의 현대사를 걸어왔다. 한쪽은 자본주의세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압축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빈부차와 계층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또 한쪽은 전후 식민시대 동조자와 부역자를 일거에 처단하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지만, 강권적인 통치와 극단적인 이념추구를 멈추지 않아 사상유례없는 수용소같은 나라가 되었다. 국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지만 군사력으론 규모대비 사상최대의 군사국이다. 이 모순과 지랄같은 상황이 우리 한국인들의 유산이자 지금의 모습이다.
시험을 잘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좋은 직장을 얻으려는 희망과 더불어 누구나 세계사와 국사를 배운다. 그 지식이 나와 크게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기 힘들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누구나 바쁘니깐. 하지만, 여행이든 출장이든 세계를 다니면, 비로소 눈이 뜨인다.
서양은 잘 산다. 유럽에는 "부자였던" 흔적이 많다. 그리고 미국에는 "부자인" 증거들이 그득하다. 나라가 힘이 있고, 재력이 있다는 증거는, 가보면 안다. 몇백년된 성당과 건축물이 즐비하고, 박물관에 가보면 값진 명화들이 방마다 가득이며, 왕들과 왕비가 기거했다는 궁궐에는 세계각처에서 모아온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 그 뿐인가? 그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란.
미국인들, 그리고 유럽인들이 누리는 삶의 수준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 초탈한 도인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보통사람에겐 그네들의 삶이란 이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물안에서 늘상 보아오던 광경과, 그저 TV를 통해 소식을 듣던 것에서, 세계를 통해 받아들이는 현실은 자연스레 우리의 역사시간과 맞물려 내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는가보다. 저들은 뭐길래 저렇게 잘나게 사는가?
아마 이 변호사도 그랬나보다.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국제무대에 오르기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출세의 계단을 밟았을 것이고, 올라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다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추구하는 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무리 알아주는 사람도, 남의 나라 공항에 도착하면, 그냥 "코리언"일 뿐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는 건 불과 10년, 15년이 안된다.
외국에 나가서 "코리언"이라 하면, 할머니는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묻는게 고작이었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그네들 눈에 한국인은 딱 두종류였다. 북한인. 남한인.
한국서 벤츠를 몰고다녔건, 한국서 다리를 둥둥 걷어붙이고 모내기를 하다 왔건,
우리는 그냥 "코리언"인 것이다. 앞에서, 혹은 등 뒤에서 "개고기를 먹는다지?"하며 빈정대는 자도 있었다. "늬네나라 쇼프로그램은 왜 일본하고 똑같냐?"하고 묻던 홍콩인도 있었다.
한때, 여행자들은 입막고 그냥 중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보이던 때도 있었다. 태어난 나라, 내가 자라온 나라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때였다.
그랬다. 앞서들어간 코리언이 뭔가 일을 잘하면, 뒷줄의 코리언은 그냥 덕을 보게 되어있고,
앞서 들어간 코리언이 추악하면, 뒷줄은 모두 "어글리 코리언"이 되어야 했다.
한국인은 개인으로도 존재하지만, 공동체로도 존재한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그 공동체의 기억으로 대접받는다.
107년전의 우리는 미개국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는, 비문명국이었다. 우리는 부자나라들 틈에 끼지도 못했다. 외교사절들은 왕이 파견한 우리 칙사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열국의 정상회담장에서 우리왕실의 대표는 그냥 구걸하는 처지였다. 공평과 정의를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거지대접이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었고, 정의는 우리편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공감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150년전의 세계는 과거가 되었지만, 우리의 삶과 풍요는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고, 이제 입장이 바뀐채 우리곁에 있다.
내 주변에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로 "망명온" 사람이 있다. 본국의 정치적 상황을 피해, 우리나라로 망명을 온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면, '이 사람은 피부만 검다뿐이지, 사실 우리네 김구 선생 아니면 이승만 같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편듯 들었다. 그 사람이 김구같이 될 지, 이승만같이 될지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이 찾은 곳은 유럽도, 미국도, 홍콩도 아니고, 한국이었다. 그리고 말한다.
"한국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 때, 그렇게도 우리네 선조들이 배우고 싶었던 나라가, 이제 우리의 모습, 우리의 나라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로 오기위해 이년여의 시간, 세개의 대륙, 여섯개의 국가를 지나왔다 했다.
과연 우리안에, 그들이 바라는 모습, 그들의 기대에 걸맞은 우리가 있을까?
우리는 정의로운가? 나는 정직한가? 우리안에 공평함과 따뜻함이 있는가? 책임을 지는가?
책 겉표지만 보면, 마치 "국제변호사가 되는 법"같은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뭔가가 달라진다. 하지만 복잡한 이야기인데 쉽게 읽힌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나서는,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타인을 경험하고 세계와 부딪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50년간, 우리는 쉼없이, "발전된 나라"들을 동경하고, 모방하고, 추종하고, 때로는 버림받아가면서도 줄기차게 따라왔다. 놀리던 그들이 이제 머쓱해지도록, 우리는 지칠줄 모르고, 그리고 밤을 밝히면서, 그들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산업화, 근대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해왔다.
이제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시점, 그리고, 뒤에서는 보이지 않던 걸 이제는 보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젠 누구도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개척해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방법, 한국인들의 방식이 세계인들에게 채택되지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도록 이제 눈을 떠야 한다. 또 그것이 우리에 대한 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인들에 대한 기대와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는 일이다. 그들은, 소수이건 다수이건, 지위가 어디에 있건,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에 대해 응답하는(responsible)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이 있다. 우리는 세계인에게 빚이 있다. 그들은, 그저 한국이 경탄스럽고 부러워서 우리를 보는게 아니다. 사실 부럽고, 잘난건 우리보다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이 저만치 앞서있다. 잘 사는 건 스위스인이나 일본인들이 더 더 앞서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인이나, 유럽인들, 미국인들을 모델로 삼지 않는다. 그런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100년전에 한국은 볼품 없었다. 60년전에 한국은 볼품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박살이 났었다. 그런데, 이제? 역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가 한국인들의 염원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열망과 염원을 단연코 세계 최단시간의 속도로 이뤄내지 않았던가? 아시아인들은, 세계는 그런 우리를 경탄의 눈으로 보고 있다. "코리아를 보라."그리고 말한다. "저들또한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참 오묘한 역사다. 우리의 험난했던 과거가, 이제 우리의 자산이 되었다니.
우리에게는 찬란한 유산도 있고, 쓰리고 아픈 유산도 같이 물려받았다. 피흘리고 배운 수업도 있다. 친구도 있었지만,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백여년전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에 서있다. 서구유럽/일본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길에 도전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누구도 우리대신 선택해 주지 못한다.
국제변호사, 국제회계사, 국제기업인 같은, 뭐 거창한 그런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우리안에 있는 누구도 이제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 그 세상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세계가 그렇게 간다고 무작정 추종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난 150년간 비싸게 그걸 배워오지 않았는가. 한 자락의 혁신, 한 주먹의 새로운 생각도 다 코리언, 우리 가운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집에 한번 들렀다 가야 하지않나 생각된다. 좋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