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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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정밀한 역사의식과 로마에 대한 애정, 그리고 치열한 탐구가 녹아든 글이다. 6년전인 대학 3년 즈음에 첫권을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 9권째다. 목표로 하는 분량의 반은 이미 넘어섰지만, 어쩐지 이번 권이 반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1권의 기세등등한 시작, 2권과 3권의 시원시원한 전개와 더불어 4권과 5권에서는 걸출한 인물이면서 공화정과 제정의 분수령을 자신의 인생속에서 우뚝 일으켰던 카이사르를 통해 로마사가 가지는 최대의 매력과 흥분을 폭발시켰다. 6권에서는 그 못지않은 긴장감과 흥분을 가지고 아우구스투스를 서술하는데 성공했고, 7권과 8권을 다루면서 제정으로 이행한 로마가 든든한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했음을 알린다.

그러나, 아뿔사-이 기막힌 말대로-이제까지 작가에게 영감과 현장감있는 역사장면을 제공해주던 믿음가는 선배 역사가가 사라져 버렸다. 타키투스라는 역사서술의 명장이 이 시대의 글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로마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훗날의 작가가 독자적으로 역사서술을 전개시켜야 한다. 비단 타키투스만이 영감의 원천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뛰어난 역사자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앞의 경우는 역사의 현장자체를 수월하게 넘나들 수 있었던 동시대인이 전해주는 사실자료와 그의 비평자료를 기반으로 더 생생하고 한편으로 이전의 비평을 총괄하거나 전혀 새로운 각도로 평가를 하는 고난도작업을 할 수 있게 하지만, 그 뒤의 경우는 그 모든 것을 혼자 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어쩌면 역사자체에 접근한 자료가 통합되어있지 않는 이상, 사실과는 전혀 딴 판으로 서술할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9권은 다른 권에서 볼 수 있었던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도발적이고 과감한 평을 찾기가 어렵고, 있더라도 매우 조심스럽다. 특히 다키아 전쟁을 서술한 저술이 없어 업적을 새긴 원기둥을 중심으로 장소도 인물도 뚜렷하게 내놓지 못하고 다만 사건의 경과만을 중심으로 전개를 이끌고 나간 것은 글짓는 작가의 고충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을 쓰는 거라면, 차라리 창작의 계기가 되기라도 하련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때문에 이 권에서는 작가의 독자적인 역사접근과 평가를 맛볼 수 있다. 먼저의 노작이 있었으면 물론 더 깊이있고 풍부한 전개가 되었을 터이지만, 그것이 없으니 차라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결단으로 유물과 유적, 지도, 편지글형식의 보고서 등을 토대로 트라야누스, 하이드리아누스 그리고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시대를 종합해나간다. 베스파시안과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시대를 거치면서 확고한 제정의 발판을 다진 로마가 네르바를 거쳐 평화시대-로마의 평화시대-를 지나가는 과정을 선보인다.

여기서도 로마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보이고 있고, 다소는 과도하리만치 친로마적이다.그렇다해도 근대의 문학작품을 빌어서까지 로마인에게 다가서려한 것은 파격적인 역사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대중에게 매력적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그러나 전작들이 후세에 지은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역사현장에 바짝 붙어서 쓴 글처럼 보였다면, 이번 편은 가까이 갈 길을 차단당한 채 먼 발치에서 서술하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참고로 할 역작이 없기때문일까? 글의 풍부하고 자신만만한 품이 다소 소침하게 보인다.

역시 반환점을 돌 때는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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