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 대륙을 질주하는 검은 말
런즈추.임국웅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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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질주하는 검은 말 후진타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름으로써 13억 중국인민의 영도자가 된 후진타오는 과연 누구인가? 런즈추와 윈쓰웅 두 명의 저널리스트가 공저한 이 책은 후진타오의 출생에서부터 국가부주석에 오르기까지 후진타오의 정치여정을 추적한 책이다. 책은 무려 660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단번에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책이다. 그러나 향후 족히 10년은 거대중국을 이끌고 갈 후진타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꼭 한번은 읽어 보아야할 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대부분 정치인에 대한 평전처럼 후진타오에 대한 찬양일색의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저자인 런즈추와 윈쓰웅은 중국공산당에 대해서 사뭇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저널리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후진타오 개인의 정치적 부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가난한 시골 찻집출신의 촌뜨기가 어떻게 중국최고권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것을 가능케 한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 지구상 현존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공산주의국가의 영도자는 과연 어떻게 세워지는가? 이 책은 후진타오 개인의 정치사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권력구조와 그 승계과정의 내막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최고권력자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1. 칭화대학을 나왔다는 점.
후진타오는 1959년 칭화대학 수리공정학부에 입학하였다. 칭화대학은 중국의 MIT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이자 중국공산당 차관급이상 정치지도자 300명 이상을 배출한 정치명문이다. 후진타오는 이곳에서 공산당조직에 의해 일찌감치 양성요원으로 주목을 받게 되며 졸업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에 정식 가입하게 되고 졸업 후엔 저학년의 정치지도를 맡는 정치보도원이 되는 등 훗날 정치지도자로서의 싹을 틔우게 된다. 또한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 류잉칭[劉永淸]을 이곳에서 만났고 훗날 칭화방이라 불리는 칭화대학 출신의 정계의 인물들과 직간접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 후진타오에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 중국공산당지도부의 세대교체바람
후진타오의 정치여정을 보면 천운이 따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981년 6월 중국공산당이 채택한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혁명화,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를 결의한 이른바 사화(四化)표준의 채택이다. 이것은 덩샤오핑으로 대표되는 혁명2세대가 자신들의 개혁개방정책을 계승할 후계권력집단의 양성을 위해 주도한 공산당의 세대교체바람인데 이를 통해서 후진타오같은 전문적인 지식과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젊은 정치인들이 약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3. 덩샤오핑과 쑹핑 등 혁명2세대의 낙점
후진타오는 1992년 14차 중국공산당대표대회에서 정치국 7인 상무위원에 당선됨으로써 장쩌민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사실상 지명되었다. 혁명2세대에 의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이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당의 원로인 혁명2세대에게 후진타오는 당에서 배치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충성을 다한 당성이 강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원로들은 후진타오가 변방 티베트와 빈곤한 벽촌 구이저우에서 묵묵히 일한 경험을 높이 샀다. 특히 티베트에서의 독립시위를 계엄선포로 강경하게 진압함으로써 당중앙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준 것은 그에 대한 원로들의 신뢰를 한층 더하여 주었고 무엇보다 덩샤오핑이 그를 4세대의 핵심인물로 주목하게끔 만든 결정적 이유였다.
 
4. 신중한 성품과 친화력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후계자로 낙점된 후로 10년을 후진타오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후진타오는 자신을 후계자로 발탁해준 혁명2세대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했고 현 집권자인 장쩌민 등 3세대의 눈밖에도 나서는 안되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것을 후진타오는 잘 알았다. 이런 외줄 타기와 같은 상황 아래서 후진타오는 특유의 신중함과 겸손함으로 양쪽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신중함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과 관련한 어떤 일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피했으며 정치적 논쟁이 되는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당 원로들의 뜻에 반하는 의사를 표명하는 일 따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 또한 아랫사람에게 군림한다는 인상을 결코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랫사람의 고충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따뜻하고 자상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 앞에서 중국공산당의 당의 정체성을 수호하면서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로 후진타오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후진타오의 어깨 위에는 두 가지의 무거운 짐이 놓여있다. 하나는 덩샤오핑이래 계속되어온 경제개발과 성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발과 부의 불균형문제와 부패문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후진타오는 이전 장쩌민과는 다른 길을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200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원자바오총리는 그동안 개혁개방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농민. 농업. 농촌을 진흥하기 위한 이른바 3농(農)정책을 제시했다. 이는 그동안 동부연안도시의 우선적이고 집중적인 개발과 불균형 성장을 주장해온 장쩌민 등 이른바 상하이방(上海幇)의 정책과는 분명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발과 분배의 균형성장을 초점으로 하겠다는 후진타오의 정책이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후진타오는 최근 <사회주의적 조화사회론>을 정치지도의 새이념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부(富)의 균형적 분배를 바탕으로 한 중국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후진타오의 또 하나의 과제는 밀려드는 사상적 자유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 앞에서 어떻게 중국공산당의 정치이념과 정체성을 지켜내느냐이다. 후진타오는 과연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처럼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한 사회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답은 글쎄? 후진타오는 정치적으로 안정보수주의자이다. 그는 당을 개혁하되 개혁이 당을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마오쩌뚱의 사상과 덩샤오핑의 중국식 사회주의건설의 이론을 사상적으로 수호해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 생각에는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다. 따라서 경제정책과는 달리 정치개혁에는 상당히 미온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중국공산당이 정치와 경제, 군사와 문화 모든 것을 지도하는 중국의 특색상 중국의 향후 행보를 이해하는 데 그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를 아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후진타오가 키를 잡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가 앞으로 어디로 향해 나아갈 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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