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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인생수업 -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한 줄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25
홍자성 지음, 정영훈 엮음, 박승원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채근담 인생수업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한 줄
홍자성(지은이), 정영훈(엮은이), 박승원(옮긴이) 메이트북스 2025-08
채근담은 고전입니다. 한글 번역을 찾아보니 10여종이 넘습니다. 좋은 고전은 해마다 번역됩니다.
채근담, 명심보감, 법구경, 선사 어록, 논어, 맹자 등 한문으로 되어 있어 두세 페이지 읽어보면 너무 내용이 좋아 두고두고 다시 읽어야지 하는 책들입니다.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고전 명작으로 남아있는데 도대체 왜 끝까지 읽지 못하는 걸까요. 10페이지를 넘기기 힘듭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안읽히는 이유는 3가지.
첫째, 분량과 구조의 문제입니다. 채근담은 전집, 후집 합쳐서 603편, 명심보감은 20편에 597조목, 논어는 20편, 492조라고 합니다. 짧은 문장들이 모여 있어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600편을 읽으려면 하루에 10개씩 읽어도 두달이 걸립니다.
둘째, 언어의 문제입니다. 한문 서적은 단 몇 글자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면 수십 줄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한문은 압축력이 좋으나 독자는 해독의 피로함을 느낍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다 보면 쉽게 넘어가기 힘듭니다.
셋째, 문장이 보여주는 울림의 역설이 있습니다. 짧은 구절이 독자를 깊이 흔들다 못해 어지럽게 만듭니다. ˝일이 없을 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일이 있을 땐 중심을 잡으십시오˝(46p)라는 쉬운 문장도 ‘일의 의미‘, 마음과 중심, 마음은 머리로 아는 것인가,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일까. 중심에 있는 것은 선가의 주인공이라는 건가, 중심을 잡을 때 마음으로 잡는 것이지 않아? 하는 식으로 두뇌와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울림이 깊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전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항상 앞부분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정영훈 엮은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번역의 정확성이나 고전 특유의 문제를 살리는 데 집중한 나머지,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뜻은 알겠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거나, 문장은 읽히지만 가슴에 남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편역본은 그런 아쉬움에서 출발했습니다.
8p, 고요한 문장이 우리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다.
바로 이겁니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은 분명히 읽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문장이 얼마 되지 않아 책은 술술 읽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모래 위로 물이 스며들듯이 글이 중심에 들어가기 전에 사라져버립니다.
전통적인 채근담 번역은 이렇습니다. 한문 원문, 한글현토, 한자 사전, 한문의 직역, 현대어 해설입니다. 올바른 순서겠지만 독자들에게는 무겁게 다가갑니다. 몇 줄 읽기도 전에 획수가 많은 한자를 보면 괜히 한번 써보고 싶고, 쓰다보면 외우고 싶고, 외우다 보면 앞부분이 궁금해서 다시 처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책은 과감하게 이 모든 장치를 삭제했습니다. 소제목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안내하고 간략한 해설이 붙어있습니다. 놀라운 시도입니다. 흔히 고전은 원문을 봐야한다, 써봐야 안다, 외워야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리가 결국 문장의 바다에 빠져 혼란스러워지는 겁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한문을 잠깐만 보아도 중국이 미워지고 눈이 피로해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립니다.
‘채근담 인생수업‘은 해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현대의 감성에 맞게 한편씩 수필의 명문장처럼 읽을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짧게 편집한 것이 필사하고 싶게 만들고, SNS에 올릴만한 분량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자기계발서, 심리학, 성공학 등으로 바로 써먹는 즉각적인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은, 고전의 문장은 수백년간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습니다. 어느 한문장이 몸안에 새겨지면 현대에서 수백년전의 선인들과 연결되었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병은 깊은 곳에서 시작되니 겉보다 속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조급한 성질은 불길 같고, 차가운 마음은 얼음 같습니다
고요할 때 마음은 맑아지고, 담담할 때 참맛을 알게 됩니다
마음을 늘 원만히 살피면 세상은 결함 없이 빛납니다
참된 마음은 큰일도 해내고, 거짓 마음은 부끄러움뿐입니다
마음이 어둡고 산만할 때는 스스로를 맑고 밝게 해야 합니다
욕심을 이기는 길은 앎과 힘을 함께 갖추는 일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모든 일은 헛되기 마련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본성이 드러나고, 생각이 맑아야 마음도 밝아집니다
일이 없을 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일이 있을 땐 중심을 잡으십시오
가난은 막기 어려워도 걱정은 다스릴 수 있습니다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괴로움도 줄어듭니다
마음에 바람과 파도가 없으면 세상도 고요해집니다
잡념을 내려놓고 지금에만 머무르면 됩니다
마음이 깨어 있으면 다 극락이고, 깨닫지 못하면 절도 세속입니다
25-57p, 마음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소제목들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 생각할 거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