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의 소설 문득 시리즈 4
김유정 지음 / 스피리투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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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선생의 소설은 학교 다닐 적에 교과서에 접한 기억이 있어 즐겁게 책을 잡았습니다. 30년 전에 읽은 것이라 동백꽃과 봄.봄이 제 머리속에 혼재되어있더군요.

아니 봄.봄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거고, 동백꽃은 닭싸움 (이 닭싸움이 소설의 크라이막스였습니다. 고구마에서 시작된 갈등이 증폭되다가 여기서 폭발한다 뭐 그런 식으로 배웠던 것같습니다) 하다가 동백꽃 사이로 살짝 넘어지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왜 머리속에 이헐게 섞여있는걸까 하고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둘다 여주인공 이름이 점순이여서 합쳐진듯 합니다.

 

제 머리속에는 이 두 소설이 섞여서 점순이가 고구마를 주는데 안먹고, 장인에게 가서 왜 성혼시켜주지 않느냐, 점순이는 답답해서 닭으로 괴롭히고, 괴롭히다가 넘어지고, 마지막에 장인이 때리는 걸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 모든 오해는 같은 이름 점순이 탓입니다.

 

또 하나 놀랬던 점은 김유정 소설의 특징은 해학과 유머가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떡을 다 읽고 보니 해학이 아니라 슬픔과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저며오는 것입니다. 하루에 겨우 죽한그릇 겨우 먹는 옥이가 잔치집에 가서 고깃국과 밥을 먹고, 시루떡, 팥떡, 시루떡을 먹다가 체해서 구르다가 경을 외우고, 침을 맞아 겨우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술술 풀어나가는데 마치 티브이의 드라마를 보듯이 저런 못된녀석, 자식을 굶기면 되나, 아이고 저리 굶다가 마구 먹으면 안되는데, 떡은 소화도 잘 안되는데 먹다가 죽는거 아냐 하고 가슴졸이게 되는 소설가의 내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쓰니 그당시에 천재로 알려졌던 것이겠죠. 단편이라 다행입니다. 장편이었으면 답답해서 숨막혔을 겁니다.

 

김유정 선생을 검색하다가 재미있었던 점은 한때 스토커 생활을 했었더군요.


1928년 봄, 조선극장에서 열린 8도 모창대회에 박녹주 명창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한 김유정은 대회가 끝난 후 수소문하여 그녀의 대기실에 찾아갔다. 박녹주와 대화를 나눈 이후 김유정은 본격적으로 편지를 통해 정식으로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이미 1920년에 원산의 부호 남백우와 살림을 차렸던 박녹주는 깜짝 놀라 김유정을 집으로 불러 "당신은 학생이고 나는 기생(연예인)이니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자 김유정은 "학생과 소리하는 사람이 사랑해서 안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냐"고 대들며 "사랑이란 국경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의 일로 그녀의 동생 태술과 친해진 김유정은 그를 통해 각종 선물이나 레코드판에서 뜯어낸 박녹주의 사진 밑에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옵소서’ 라고 적힌 편지 등을 박녹주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https://namu.wiki/w/%EA%B9%80%EC%9C%A0%EC%A0%95(%EC%86%8C%EC%84%A4%EA%B0%80)

 

이정도만 했으니 좋은 팬으로 남았을 것인데 더 나아가서 나중에는 혈서도 보내고 상당히 심하게 했더군요.

 

돌아가시기 11일 전에 친구 안회남에게 쓴 편지가 애뜻합니다. (안회남에게 보냈는데 왜 이름이 필승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렬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라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허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딱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9C%A0%EC%A0%95_(%EC%86%8C%EC%84%A4%EA%B0%80)

 

책 뒷편에 이순원작가의 말이 상당히 감동적이어서 몇번을 읽었는데 시대가 안맞더군요. 김유정 선생은 1937년 3월 29일 30세에 돌아가셨는데, 이순원작가는 1957년생이네요. 그래서 동상앞에서 물어봤더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절묘해서 진짜 만나뵙고 이야기를 들은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김유정문학상에 갈등이 있는걸 보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1012157400062?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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