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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평점 :
인간의 삶은 철학서에 나오는 개념와는 달리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 철학사를 쫌 아는 친구 Y로부터 하이데거가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철학가 한나 아렌트의 연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히틀러 지지 선언에 경악하여 망명까지 결심했지만, 나중엔 하이데거를 지지한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전후 나치즘 부역으로 입지가 좁아진 하이데거를 위해서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점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사랑을 하고, 사상적으로 교감한다.
책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는 책 후반부에서 하이데거가 나치 부역이라는 오점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밝힌다. 재밌는 점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사상가와 작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혁명과 저항의 상징이었던, 시인 김수영는 하이데거의 저서인 일본어판<존재와 시간>을 연구하듯이 읽었다고 한다. 과거 김수영의 시 <풀>에서 시어 '풀'과 '바람'은 각각 '민중'과 '독재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도식적으로 설명되곤 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하이데거 철학에 정통한 국문학자는 '풀'과 '바람'은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김수영 시에서 바람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료한 해석이 불충분했다. 작가 한상연은 '바람'을 삶과 존재의 근원적 무상함과 고유함을 상징하는 시어로 풀이한다. 그가 보기에 '바람'은 거대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은 자유롭고 고유한 삶의 완벽한 상징에 가깝다.
하이데거는 이렇듯 개인이 국가나 체계의 도구가 되지 않고 고유의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중요시했다. 극우 전체주의에 동조했던 하이데거의 행적을 떠올리면 선뜻 이해가 가진 않는다. 하지만 나치즘과 맨 처음 손을 잡았던 시기, 하이데거는 현대 세계를 '계산적 사유의 폭력성'이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계산적 사유'는 인간과 자연이 가진 고유함을 말살하고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자본주의적이면서 도구적 사고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하이데거를 두고 어떤 이들은 하이데거 철학 전체를 '나치즘의 산물'이라며 비난했고, 다른 이들은 인간 하이데거가 가진 편협함은 비판하되 철학적 업적만은 폄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맞섰다.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후자의 견해에 서서 하이데거 철학이 갖는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다. 총 5부에 걸쳐 그의 전기, 중기, 후기 서적을 소개하고, 철학 개념을 중심으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한다. 또한 철학적 사유를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하이데거의 사상을 어떻게 삶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 촉구하고 있다.
1부에서는 존재, 현존재을 중심으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2부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으로 자기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진실한 친구를 얻기 위해 고유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3부는 자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앞둔 인간은 양심과 직면하여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선과 악에 대한 독특한 성찰을 전해주는데, 인간이 세상이 말하는 선과 악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선악이 종종 집단의 이익을 위한 계산에 불과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통찰한다.
4부는 하이데거가 마흔 이후 사상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이른바 '전회'를 맞이한 것에 대한 의의를 설명한다. '전회'를 이전의 사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완전히 바꾸는 '방향 전환'이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전회는 마흔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겪는 변화와도 유사하다. 마흔 즈음 사람들은 '순응'했기 때문에 고유한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전회 이전의 하이데거는 죽음을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단호하게 결단해야 할 계기"로 보았다. 하지만 후기의 그는 죽음을 "나의 유한함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긍정하는 수용의 계기"로 본다.
저서 <숲길>에서 하이데거는 "죽을 자인 우리가 각자 자신의 고유한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진정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이는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사랑하고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놀이하듯 일하며 '자기 고유의 세계', 즉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5부는 후기 하이데거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참된 철학이란 논리적 추론이 아닌 '시 짓기'에 가깝다. 여기서 '시'란 삶과 존재가 그 자체로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가와 관련이 있다. 시 짓기는 박제된 지식이 아닌,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우선시할 때 그 체험의 언어를 통해 존재의 비밀을 드러낸다.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마흔이라는 특정 나이대의 독자를 포함한, 하이데거를 처음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입문서이다. 인간을 도구가 아닌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여기며, 현존재로써 나를 만들어나간다고 보았던 하이데거 철학의 내용을 읽다보면, 저절로 위로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 관계가 삭막해지고 인간의 고유성이 점차 지워지는 현실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