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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시
이대환 지음 / 실천문학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여름농활을 출발하는 날이었다. 내 가방속에는 이대환의 소설집 <생선 창자속으로 들어간 詩>라는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 일주일전 상주 농민회와의 간담회를 다녀온 후 서점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고른 책이었다. 제목에 '詩'라는 글자가 들어있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때문에 그책을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3학년이었고, 40명이 넘는 '지리 농활대'의 농활대장이었다. 우리 농활대가 들어가는 곳은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새벽기상, 오전 오후작업과, 분반활동, 평가, 주체회의, 새벽까지 이어지는 농민형님들과의 술자리까지, 잠시도 쉴틈없는 바쁜 날들이 계속되었다. 책임감으로 무장된 내 의식은 그런 피곤한 일상들을 무리없이 견뎌낼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짬짬히 자투리 시간을 모아 책을 읽었고, 그 책은 내 속의 어떤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단편 <생선 창자속으로 들어간 時>에는 '우리들의 문민시대 3'이라는 작은 부제가 붙어있다. 소설은 주인공 김홍백이 아들의 담임선생님(역시 해직교사출신의)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 전개된다. 김홍백은 동명산업이라는 중소기업의 계장이면서 남몰래 시를 써왔다. 80년대 후반, 그는 노조건설 과정에 깊숙히 개입하고, 회사내부의 비리를 폭로한 이유로 해고된다. 이후 소위 '블랙리스트'로 철저히 재취업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가족의 부양을 위해 그가 선택한 직업은 '생선장사'였다. 생선배따는 일급기술자가 되었을때 단 1편의 시를 쓴다.
'왜 시를 쓰지 않느냐, 빈번이는 아니지만 대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직업가수가 밤무대에서 직업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시를 써서 먹고 살지 않으니 시인이 곧 나의 직업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시를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 시간 쉬어도 좋다. 언젠가 가슴에 절실한 언어들이 골싹하게 고이면 혓바닥도 저절로 움직이겠지. 선생님.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찍히 저는 이렇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포기한적 없습니다. ... 그렇지만 선생님 저는 정말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
처음으로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후 작업을 마치고 땅거미 깔리는 논둑길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걸어오면서 흥얼거리던 '말'들은 내 수첩 한켠에 한자한자 옮겨졌다. 내 키보다 더 높이 자란 담배밭에서 옆순을 따내는 맑고 경쾌한 소리들이 '말'이 되어 적혔고, 까맣게 검댕이 낀 냄비뚜껑을 열면 꽃처럼 피어나던 하얀 밥 냄새도 '말'이되었다. 열흘의 짧은 농활기간이 끝나갈때 즈음, 넝마처럼 낡아버린 농활수첩 한켠에는 그렇게 모아진 대여섯편의 시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시가 쓰고 싶었다.
오늘, 책장에서 우연히 이 책을 찾아냈다. 제멋대로 구겨진 표지와 닳은 책장 속에 편지 한장이 들어있었다. 책을 펴들고 보니 5년전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화장실 뒤켠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배를 태우며 나누던 농담들이 되살아난다. 마을회관 천장을 까맣게 덮고 있던 파리떼를 보며 '까만은하수'를 떠올린 천진난만한 후배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엄더미를 헤집으면 뽀얀 훈김에 섞어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불현듯 내 농활수첩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쓴 시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사라져버린 내 수첩 한켠에 묻혀 어디선가 긴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도, 혹은 누군가에 의해 불쏘시개로 쓰여 한줌 재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꺼내고 싶지도, 찾고 싶지도 않은 나의 소중한 기억들. 잃어버림으로 해서 더 소중한 나의 詩들.
그때 이후론 한번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적이 없다. 어디선가 잠자고 있을 나의 詩들을 대신해 소설속의 시 한편을 대신 적는다.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나의 시를
나는 꺼내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나의 시가
죽은 고기의 창자들과 함께
폐기물더미 속에 파묻히는 한낮
오,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례여
시의 죽음이여.
썩은 창자의 무덤을 뚫고 올라와
내 젊은 날의 혀처럼 붉게 피어나는 꽃잎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