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저는 이 책 전체를 읽은 것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의 <악마의 사도>에서 간접적으로 이 책을 인용한 부분들을 가지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합니다.
이것이 '편견적'이거나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저자들과 도킨스, 더 확장하면 미국의 과학적 실증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태도가 이와 똑같습니다. 단편적인 서술을 보고 그것이 헛소리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입니다.

소칼, 브리크몽과 그들을 우호적으로 보는 도킨스는
라캉이 '그러므로 이것의 의미 작용을 대수식에 따라서 계산하면 이렇게 됩니다. 즉 s(기표)/s(기의) S=(-1)
s= 제곱근 -1이 됩니다. 발기 기관은 위에서 형성된 의미작용의 제곱근 -1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표(-1)의 결여가 가지는 기능에 대한 진술의 계수만큼 발기 기관이 복원시키는 향유의 -1에 해당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제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수학적 오류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헛소리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다른 텍스트를 인용해봅시다. 소칼, 브리크몽(또한 도킨스는)은 보드리야르의 '어쩌면 역사 자체가 카오스의 구조로서 파악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속 운동이 선형성에 종지부를 고하고 가속 운동에서 생겨난 난류가 역사를 그 종착점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비껴가게 만드는 그런 구조로서 말이다. 그와 같은 난류가 결과를 원인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이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역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는 문장일까요? 저자들은 이 문장이 쓰인 맥락도 주지 않고서 제멋대로 헛소리라 치부하고서 보드리야르를 알고 있는 독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데요(사실 책이 다 그런식으로 서술되어있습니다. 자기들 시각에 이건 말이 안된다. 이 한문장을 길게 풀어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문장이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저는 얼추 이해가 되더군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실재와 가상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 둘이 혼란되는 시간적 지점이 바로 현대이고, 여기서 시뮬라크르라는 '참도 거짓도 아닌 사물, 의미를 초월한, 의미가 파열된 사물, 자신이 먼저 실재임을 자처하는 사물, 인과관계를 초월한 사물', 라캉적으로 말하자면 '의미가 미끄러진 순수 시니피앙으로서의 사물'이 생겨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아무 뜻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실재성으로서의 의미를 이미 초월해버렸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역사는 현대에 들어와 영화가 생겨나면서 사라지고 오히려 영화만이 역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라면, 뒤죽박죽으로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신라 시대를 마구 넘나들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공간을 아예 '실재적으로도' 초월한 역사를 느끼게 되는거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위에서 인용한 텍스트를 보면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후기에 보드리야르는 더 극단적으로 가서 현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식 자체가 세계를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역사 자체가 카오스의 구조로서 파악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속 운동이 선형성에 종지부를 고하고 가속 운동에서 생겨난 난류가 역사를 그 종착점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비껴가게 만드는 그런 구조로서 말이다. 그와 같은 난류가 결과를 원인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처럼'은 다음과 같이 풀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역사 자체는 일방향적인 시간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카오스(그리스 신화의. 또한 플라톤의 일자(하나))로부터 수없이 시공간을 초월해 파생되는 것처럼 봐야하는지도 모른다.(그리스 신화처럼 생각한다면, 결국 끝없이 무한하게 많은 다른 실재들이 계속 생기는 거죠. 그게 시뮬라크르의 작용이고요)실재성과 의미가 미끄러지는 운동이 가속화되면서 일방향성(우리의 기존 생각이죠)에 죽음을 고하고 이 운동이 낳은 난류(의미를 끝없이 파괴시키는 견딜 수 없는 뜨거움 ㅡ 마치 용암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가 역사의 종착점(만약 역사가 유한하고, 일방향적이라면 이것이 있겠죠.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바로 이 역사의 종착점에서 시작되죠)으로부터 탈선하게(일방향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초월을 의미) 만드는 그런 구조로서 말이다. 그와 같은 난류가 결과를 원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처럼(인과의 초월. 곧 시간의 초월)'

저자들 '덕에' 단편적인 텍스트만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얼추는 맞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적어도 단순히 근거도 없이 헛소리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변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자들은 오히려 단순히 말도 안된다는 말로 끝냄으로서 오히려 독자의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느점에서 용어 사용을 잘못하고 횡설수설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횡설수설인가요? 적어도 제가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한 보드리야르의 텍스트를 해석해보니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지적사기, 악마의 사도 같은 책들은 '자신들의 이론과학적 지식만을 믿고 과학적 실증주의의 잣대에 의해 다른 학문 분야를 멋대로 판단하는' 기만이자 남의 글을 이해하려하지 않는 지적 게으름과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저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천재이고 '진정한 지식인'인양 으스대고 다닙니다. 마치 일베인을 보는 것 같습니다. 피상적으로, 남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하고서 그냥 다른 입장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자기만의 시각을 우월하게 보고 자기들끼리만 좋아서 킥킥거린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실제로 소칼과 브리크몽은 모르겠지만 도킨스의 경우 읽어보면 태도 자체가 너무 일베같아서 토나오더군요. 이 책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이미 예전에 출판되었던 2000년에도 신문에 혹평이 실렸었고 태도와 증명의 불성실성에서 상당한 지성계의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지금, 다시 출판된 걸까요? 정말 출판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황하지만 혹시나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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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2014-01-19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농담처럼 회자되는 발기 이콜 i 라는 수식을 쓴다는 프랑스철학 사기꾼들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차라리 수천년전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실재를 수식으로 표현하려 노력했지요. 포스트모더니스트 학자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몰이해를 보여주는 비유를 굳이 사용해서 학자연 했으니 사기질인 것이죠. 지금에야 안통하지만.

포스트모더니스트 학자들의 지적 뻥튀기들을 볼때마다 일베의 광주민주화 운동은 북한 공작원짓이다라는 검증되지 않는 거짓말 보는 것 같습니다.

2000년대에도 신문의 먹물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지만... 천리안이나 하이텔등에서도 포스트모더니스연하는 국내의 먹물들이 판판히 온라인에서 깨졌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도 포스트 모더니스들의 수학실력, 물리실력이 엉터리고, 거짓말에 의한 비유라는 걸 인정은 시켰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본인들이 무슨 지적 사기를 대학에서 배웠는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듯. 이해는 합니다. 나라도 저런 것에 발을 들여다 놓았다면 후회대신 모른척 하는게 편하겠죠. 악마의 사도 취급으로 자신들의 오만함을 다른 이들의 오만함으로 찔리는 것을 가리는 공격이나 하면서요. 요즘엔 이런류들이 수식을 아예 안쓰는 말장난 지젝으로 자폐한다면서요.

이런 좋은 책을 개정판으로 보다니 너무 좋군요. 책 나오자마자 알라딘에서 일베 얘들이 변호인 별점 테러하듯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던데 이젠 별점도 정상에 가깝게 많이 올라오는 듯 합니다.

비로그인 2014-03-03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칼이 일베라니
촘스키가 일베라니
아니 이게 무슨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