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람들은 착하게 태어났는데 삶을 살아가면서 그 성품을 유지하는 사람과 악하게 변질되는 사람이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내 짝꿍은 반대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악하게 태어났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옳고 그름의 행동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었으나 점점 살아가다 보니 성악설이 맞는 것 같은 데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예시로는 '현실주의'냐 '이상주의냐'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완전한 이상주의자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은 현실을 즉시 하면서 살아가야지의 현실주의 사고방식으로 변해가면서 좀 더 이성적이고 냉정해지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치관이 흔들리기도 변화되기도 유지되기도 하는 듯하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캉디드는 이름이 뜻하는 바처럼 순박한 소년이다. 그는 스승 팡글로스에게 '세상은 최선으로 되어 있다'라는 낙천주의 사상을 교육받는다.
그러나, 퀴네공드양을 사랑하여 남작으로부터 성에서 쫓겨나는 일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 된다. 그는 원숭이를 쏘아 죽이기도 하고 종교 재판을 받기도 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고,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엘도라도를 제외하고는 군인도, 판사도, 사제도 모두 인간의 사악함과 추악함에 끝도 한계도 없음 등 여러 가지 부조리를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는 도덕적인 악과 자연재해까지 잔인한 은밀한 불행이 그를 덮쳐왔다.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순박한 청년 캉디드의 부조리를 겪는 경험을 본다면 그는 낙천주의 가치관이 충분히 흔들릴 뿐만 아니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볼테르는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마무리를 한다. 그가 결정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다.
뻔한 말, 그럴듯하게 수식한 말들이 아닌 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철학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책이었다. 풍자소설, 철학소설의 진면모를 갖추고 있기에 캉디드의 여정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주인공의 어리석은 행동에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정이 끝나며 볼테르가 전하는 메시지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에서 캉디드를 추천하여서 궁금했던 책을 바로 좋은 기회에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자기 계발서에 걸맞은 이런 책을 좋아한다. 책이 주는 재미와 그 속에 담긴 묵직함, 여운,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책은 곁에 두고 몇 번이나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재미와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어리석은 나약함이 아마도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요? 등에 진 무거운 짐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싶어 하면서도 여전히 그대로 지고 있으려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요? 삶을 혐오하면서도 그것에 집착하다니! 우리 몸을 파먹는 줄 뻔히 알면서도 결국 그것이 우리 심장을 파먹을 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이런 바보가 또 어디 있을까요?"
"불행은 우리에게 권리를 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