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세계사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순간부터 인물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스탈린, 히틀러, 레닌, 마오쩌둥, 처칠, 나폴레옹 등 역사에서 너무나 큰 발자취를 남겼기에 책에서나 온갖 매체에서나 자주 등장하여 궁금하였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나폴레옹 세계사>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보고 10월부터 거의 4개월을 기다리고 읽어보게 된 책이다.

처음 책을 받아보고 이렇게나 두꺼울 줄이야... 싶었고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나의 기우였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나폴레옹과 관련된 역사나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고 보았음에도 괜찮았다.

이 책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개관한다.

두 번째는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간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구성했다. 나폴레옹과 유럽의 대응, 프랑스-영국 간의 긴장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세 번째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추적한다.

주석 빼고 1127페이지 가량의 방대한 책이다. 그렇기에, 나의 주관적인 관심사 위주로 나폴레옹의 등장, 전쟁, 몰락을 간단하게 서평에 담아보려고 한다.




1차 대불동맹전쟁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장

싸움은 프랑스 군대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오늘날의 벨기에) 침공해 국경 지역에서 얼마간 성공을 거두면서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전쟁을 이끌고 나갈 주도권을 붙잡았고 병력의 수적 우세가 점점 커지고 열렬한 투지가 올랐으나 이들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793년 영국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에스파냐, 나폴리를 비롯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1차 대불동맹에 가담했다. 이때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혁명 분파들 간의 격렬한 권력투쟁과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행정적 난국으로 공화국 군대는 물자와 급여의 부족에 시달렸고 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프랑스 군이 영국-에스파냐 연합군을 전략 요충지인 툴롱 항에서 몰아냈는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무명의 포병 소령이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전쟁 수행 과정에서 난관에 빠진 프랑스를 건져낸 사람은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프랑스를 서유럽의 헤게모니 세력으로 만들었고 영국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맞수가 되었고 보나파르트의 고집 때문에 프랑스의 이해관계는 아드리아해 연안까지 뻗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공화국의 일개 군인에서 커다란 정치적 야심을 품은 정치가로서 보나파르트의 부상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나폴레옹 황제 등극 후 첫 승리 울름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보나파르트는 통령 정부에 맞서 음모에 당기앵 공작이 가담한 것을 의심했다. 일체의 증거나 증인이 없었음에도 처형되었고 부르봉 가문 왕족의 마지막 혈통을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나파르트는 반대파에게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기꺼이 쓸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프랑스 지도자의 목숨을 노린 왕당파의 음모는 더는 없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부정적 반응을 촉발하였다.

1804년 12월 2일, 황제 대관식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렸다.

한 손은 관을 쥐고, 한 손은 칼 위에 얹은 프랑스의 새로운 군주는 자신이 자수성가한 인물임을, 자신의 권력은 다른 누구의 덕분도 아닌 자기 자신 덕분임을 과시하려고 작심했다.

프랑스에 큰 적대감을 가진 러시아의 주도로 여러 동맹국이 형성되었다. 나폴레옹은 동맹 세력의 위협에 맞서러 면 신속하게 움직여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동맹군이 진격해오자 프랑스 병사들은 하루 평균 3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했다. 나폴레옹은 재빨리 행동했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적을 속이기 위한 정보의 이용이었다.

프랑스군은 마크 장군의 연락선을 끊고 퇴로를 차단하였고 오스트리아군의 사기를 꺾었다. 러시아군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운데 마크 장군은 병사와 무기를 내주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울름 승전은 대단한 개가였다. 병사들의 무기가 아니라 병사들의 다리로 싸운 방법이었다.

동맹군이 아우스터리츠 도착했으나 프랑스군은 동쪽에 있는 프라첸 고지에 배치했었다. 이는 적들의 마음속에 프랑스 진영이 허약하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박아주기 위해서였다.

동맹군의 공격은 자욱한 안개가 전장을 휘감으며 프랑스군의 주력을 감추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결정적 순간 안개가 걷히고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이 전장을 비추자 프랑스 군은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아우스터리츠는 나폴레옹 군사 전략의 걸작이었다.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오스트리아 군대는 확실하게 참패를 당했다.

울름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읽으면서 <전쟁과 평화>가 생각났다. 비록 상권뿐이 못 읽었지만 이 전투들을 배경으로 다룬 그 시대의 러시아 이야기였다.

그때 읽을 때는 역사적 지식이 없었기에 휘리릭 넘겼던 것이 지금에서는 아쉽다.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면 더 와닿았을 텐데..



프랑스와 나폴레옹의 몰락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다. '동장군'이 원인이었다고 얘기되어 오지만 대 육군의 전력이 거의 절반을 전쟁의 초기에 질병, 탈영, 사상자로 인해 상실했다. 또한, 이전의 전투에서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규율이나 전폭적인 헌신이 없었다.

대제국 프랑스는 1년 사이에 와해되었다. 거의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며 경제는 기울고 산업은 정체 상태였으며 평화를 향한 대중의 열망은 열정적이었다.

동맹 세력은 무조건적인 퇴위를 요구하였고 나폴레옹은 아들이 후계자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퇴위 문서에 서명하기로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러나, 1815년 3월 나폴레옹은 프랑스로 대담한 귀환을 감행해 유럽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엘바 섬의 축소판 왕국을 열심히 다스리던 열 달 동안 유럽 본토로부터 정보가 아낌없이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나폴레옹은 모든 역경을 무릅쓰고 의지로 제관을 되찾았다.

다시 일으킨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패했고, 승전 동맹국들은 나폴레옹이 전쟁 포로이며 그를 탈출할 수 없는 장소에 가둬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영국이 신중하게 논의한 끝에 프랑스에서 72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 대서양의 황량한 섬 세인트헬레나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또한, 혹시라도 모를 가능성을 줄이고자 롱우드의 외딴 집에 사는 나폴레옹을 감시하기 위해 소규모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워낙 방대한 책이기에 주요 일부 내용만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길어졌다.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아 매우 좋았고 나폴레옹의 등장부터 대표적인 전투, 그의 몰락을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값진 책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도 여러 관점에 따라서 많이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는 식민 지배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이어서 방대한 분량인 일명 '벽돌 책'을 읽게 되었다.

너무나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여도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겠지만 같이 읽어서 완독을 할 수 있었고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던 책이기에 더욱 뿌듯하고 나의 지식의 양식을 한층 더 쌓은 기분이다.

궁금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양과 값이 꽤 나가기에 도전하라고 선뜻 말은 못 하겠지만 개의치 않다면은 무조건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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